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 나는 책에 잡아먹혀버렸다...(?)
세탁기에서 자신의 일이 끝났다는 멜로디가 울렸지만 나의 소중한 빨래들은 "그래... 언젠가는 널어주겠지..." 라는 희망 속에서 한참 동안 방치됐다.
결국 책을 덮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억지로 빨래를 널었지만 널은 후 다시 책을 들고 침대로 직행했다.(빨래를 널고 난 뒤 원래는 불을 끄고 내일 출근을 위해 잠드는 것이었다.) 달까지 가자는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누가 내 얘기를 책으로 쓴거지?"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경험해보았을 사건들이 모두 이 책에 모여있다.
팀장님과 동료들의 에피소드는 현실을 너무도 절묘하게 반영해서 본인들의 사연들과 매칭되며 킹받는 경험을 하게된다. 진짜다.
이리 자조적으로 웃길수가 없고, 직장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긴밀한 눈치, 언행 등에 대해 킹받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매일 겪는 그 애증의 현실을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낼 수가 있다니. 나는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책은 세 주인공의 이더리움 투자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시 누구나 한 번쯤은 투자에 손을 댔거나 아니면 최소한 코인 얘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단순히 투자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통해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들, 인간관계의 미묘한 역학까지 흥미진진하게 엮어냈다.
달까지 간다라는 책을 비유하자면... 판교의 '밥볶다'라는 밥집이 떠오른다. 이곳은 대패삼겹살과 채소, 김가루, 그리고 밥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볶음밥 맛집인데, 이 소설도 딱 그렇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은밀하게 모가는 단체 메신저 방의 이야기들, 그리고 비밀스런 그들의 회동, 킹받게 하는 팀장, 거기에 화룡정점으로 가상화폐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는 하나의 완벽한 문학 볶음밥을 만들어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밥볶다의 식탁 앞에 앉아 있게 된다. 독자들이 갖고 있는 직장인의 현실적인 냉혹함이 차갑고 싸늘히 식어있는 불판이라면, 책을 읽는 순간 가스불은 켜진다. 갖가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재미요소로 달구어지고 한데 모인다. 이내 "치익" 소리를 내며 코끝을 자극하고 곧이어 동료들과의 즐거운 시간, 이더리움의 희망과 웃음이 김처럼 피어오른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퇴근을 하고 침대 위에서 이 책을 펼쳐읽으며 대단한 식재료나 화려한 파인 다이닝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배고픈 점심시간, 볶음밥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 직장인의 삶에 대한 은유를 보여준달까?
몇번이나 강조한다. 달까지 가자는 단순히 웃기고 즐거운 책 그 이상이다. 직장인의 삶 속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동시에 소소한 행복과 유대감을 깨닫게 한다. 등장인물 셋은 귀엽고 통통튀는 매력도 있어 읽는 동안 은은한 웃음도 떠나질 않는다. 직장 생활에 지쳐 있거나, 이더리움 투자 열풍 속에서 좌절이나 승리감을 맛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기억을 유쾌하게 떠올리며 재충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분명 당신을 웃게 만들 것이다. 웃음이 필요한 순간 이 책을 펼쳐보자. 비록 우리가 매일 현실의 "바닥을 치는 개잡주" 같은 날을 보낼지라도 웃음만큼은 "Outstanding"할 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아님말고.)
내가 느낀 킹받는 장면들을 모두 모아보았다. 일부는 너무 길기 때문에 줄글형태로 요약해 기록해둔다.
"팀장님, 15분 전이에요. 꼭 지금 드셔야겠어요?"
"응, 나는 마셔야겠어. 여태까지 줄 선 게 아깝잖아. 거의 다 왔잖아."
까페 밖으로 나왔다. 10시 54분. 팀장이 "뛰어!"라고 외쳤다.
"그럼 다행이지. 다해씨가 아침부터 뚱한 표정 하고 있어서 기분 안 좋을 뻔했는데, 그 커피 마시고 기분 좋아졌잖아."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확실히 노멀은 아니야. 나는 눈을 흐리게 뜬 채 방긋이 웃어 보였다.
"다행이네요, 다행"
"그렇지? 아주 다행이야."
각 등급의 알파벳은 이런 뜻이었다.
Outstanding: 특출함
Incredible: 뛰어남
Meet requirement: 요구 충족
Below requirement: 요구 이하
Need supplement: 보충 필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바꿔 불렀다. 아무래도 이쪽이 훨씬 직관적이었다.
O: 오짐
I: 인정
M: 무난
B: 별로
N: 나가
연구개발실의 조직도에 뜬금없이 '빅데이터TF'라는 가지가 하나 생겨났고 그 아래에는 함박사와 그의 비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중략...
"대체 그 아저씨가 작년에 뭘 했는데? 초코밤이랑 츄잉껌 개수 센 것밖에 더 있어?"
* 식후 커피가 스타벅스면 순수한 동료, 커피빈이면 썸인 이유에 대해...
12시 3분이 되는 순간 나는 바퀴 달린 의자를 스윽 밀고 일어나면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오늘 약속 있어서 점심 따로 먹을게요. 맛있게 드세요."
동시에 공용 옷걸이에 걸어둔 코프를 팔에 걸고 후다닥 복도로 나갔다.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뒤뚱뒤뚱 걸으면서 귀신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쓰레기들을 피하며 으악! 으악! 소리 지르다 이내 웃었다.
참 이상했다. 소리를 지르고 난 뒤에는 곧바로 웃음이 따라나왔다. 비록 그게 헛웃음일지라도 말이다. 비명과 웃음은 어쩌면 한 세트 일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내가 점심시간을 3분 더 썼다는 사실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아랫사람인 내가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자신의 나이와 경력과 그로 인한 권위를 세워주지 않는 것이 못마땅한 거였다.
컨트롤 키와 W키를 동시에 눌렀다. 팀장이 내 등 뒤쪽으로 통로 삼아 지나갔다. 나는 또다시 손가락을 재빨리 놀렸다. 컨트롤 + 쉬프트 + T. 저 멀리 창문 너머로 함박사가 이를 쑤시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들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중개인 아주머니가 거 보라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너무 호들갑스럽지는 않게 말했다.
"요게 또 너무 괜찮지요?"
대답은 못하고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투자했던 회사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언니는 전에 없이 살스럽게 욕을 해댔다. '쥐벼룩을 놔도 뛸 장에 저 혼자 바닥을 쳐 뚫고 앉아 있는 개잡주'라면서.
불행히도 팀장의 '다 같이'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한테이블에 모두가 모여 정말로 '다 같이' 점을 보자는 말이었다. 서로의 점괘를 함께 듣자는 말이었다.
나는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윤과장의 결혼 준비 과정과 파혼 위기, 두 집안의 갈등 같은 것들을 들으면서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나만큼이나 울고 싶은 사람은 윤과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 나와. 열심히는 안 한다고. 꾀 쟁이라고. ...중략... 근데 열심히 하면 더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네. 그치? 맞아? 아니야?"
미치겠다. 점점 더 맞는 말만 해서 갈수록 섬뜩해졌다. 애써 팀장의 눈길을 피해보ㅓ려 했지만 눈이 관자놀이에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날 선 시선이 다 느껴졌다.
나만 당할 순 없었다. 팀장의 점괘도 같이 들어야겠다고, 그래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고, 억울해서 나도 다 듣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윤과장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팀장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팀장이 나와 윤과장을 둘러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들은 이제 가. 나는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
기가 찼다. 야, 너만 개인이니? 나도 개인이야! 정말 보통 놈이 아니었다.
* 남은 얼마남지 않은 점심시간 콩나물국밥을 후루룩 먹고올지 고민 하던 중 결국 핫도그 세개를 설탕 뿌려 먹는 장면
'과자 무료 제공'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버튼을 눌렀더니 '장점은 최소 10자 이상 입력해주세요'라는 알림창이 떴다.
"알겠어. 내가 예약할게. 뚜껑 열리는 걸로!"
하지만 지송이야 예약해둔 뚜껑 열리는 렌터카에 정작 지송이는 못 타게 될 위기였고, 동시에 은상 언니의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지송이는 아주 커다란 챙이 달린 플로피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은상 언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쟤 우리랑 허니문 가?"
* 지송이의 트렁크가 고장나는 장면, 그리고 다해가 '오리지널'과 '스타일'의 차이를 느끼는 장면
"OS 업데이트부터 할게요. 해도 되죠?"
"응, 가상화폐 할 수 있게만 해주면 돼."
.....
중략
....
"아무래도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무슨 때?"
"엑싯을 해야 할 때."
나도 그 얘기 들었는데...... 솔직히 그게 부럽나? 그게 좋을 것 같아? 좋을 것 같지? 알고보면 절대로 좋은 게 아니야. 중국 송나라 시대 학자 중에 정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 있어. 인생삼불행.......
노력을 안하는거야. 타고난 재능은 딱 거기까지일 뿐인거야. 결국 가진 재능을 갈고닦질 못해. .............. 그러면 사람이 말이야, 발전이 없는거야. 발전이 없으면 도채되는 거고. 그리고 마지막이 뭐냐, 소년등과일불행이야. 일불행이 무슨뜻이야. 제일로다가 불행하다는 거야, 소년등과하는 것이.
"아니, 말이 잘못 나왔네요. 저 CLS랑 E클래스부터 볼게요. S클래스도 보여주시고요."
...중략...
이런 고급 세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어니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흐음"하고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면 우리도 "으음"을 했고, "와우" 하면 "오우" 했다.
아니 그런데... 노파심에 말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투자는 매우 좋지 않은 투자방법이다.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를 적립식으로 매수하는 것은 시기에 따라서는 매우 부적절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실 최고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에 이더리움 투자 시기를 결정했다.
책 속에서 다해는 2017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이더리움을 적립식으로 매수하여 총 3억 2000만 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는 등장인물들에게 해피엔딩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배경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투자는 언제나 장밋빛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소설 속 투자 시점이 몇 달 늦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 적립식으로 매수를 했다면, 결과는 처참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이더리움 가격이 급락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해당한다. 단순 계산으로, 다해가 동일한 원금(약 1억 원 정도로 가정한다)을 투자했을 경우,
당시 평균 매수가와 12월의 최저가(약 82달러)를 비교하면 3억 2000만 원의 이익은커녕 약 5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사이의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런 일이 작속에서 벌어졌다면 소설은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다해는 자신의 소소한 꿈마저 저버려야 했을 것이고. 은상과 지송의 관계 또한 다시 치열한 갈등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금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열풍이 뜨거워지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의 이야기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에서 매우 축복받은 케이스임을 명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