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in Waltz in A minor B.150

 

 

거짓말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말들이 있다. 차마 꺼내놓지 못한 말들. 혹은 너무 늦어버린 말들.

하지만 어떤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해미의 거짓말 노트도 그랬다.

해미의 거짓말 노트는 단순한 거짓말을 복기하기 위한 노트가 아니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아파하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언니를 잃고도 남아 있어야만 했던 자신의 존재 이유 같은 것이었다. 해미는 매일 노트에 적었다.

나는 어떤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 친구와 어떤 일을 벌였는지 상상하며 말이다.

하지만 해미의 진짜 하루는 그 문장과 정반대였겠지. 점심시간에 혼자 구겨진 도시락을 열었다가 그대로 덮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멀리서 듣기만 하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교실 구석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을지도.
그러나 그런 솔직한 이야기들은 노트에 적히지 않았다. 엄마가 해미의 거짓말을 듣고는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정말 좋은 것일까? 누군가를 위해 꾸며낸 말들이 결국 내게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되돌아올 수도 있는 건 아닐까?

거짓말을 쌓아 올릴수록 해미는 점점 더 고립되었을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진짜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감춰야 했을 것이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엄마가 버텨낼 수 있도록. 하지만 엄마를 위해 쓴 그 거짓말들이 어쩌면 해미 자신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속에서 해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사랑일까?" 하지만 어떤 사랑은 끝끝내 오해로 남고 어떤 사랑은 끝내 닿지 못한 채 스러진다.

 

 

 

이별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고, 깊어진다.

잊히지 않을 줄 알았던 감정들은 서서히 옅어지는 법이라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K.H와 선자 이모의 이별이 그랬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말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따뜻한 인사였을까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빛만 주고받았을까.
어떤 작별은 너무 평범해서 그 순간에는 그것이 마지막인 줄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애달프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돌아선 그 길이, 사실은 끝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게 되니까.

선자 이모는 평생 그 순간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한 번쯤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무심하고 내 마음이 어떤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기적 같은 일들은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어느 순간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봄볕이 나뭇가지를 스치면 꽃이 피어나듯이 그들의 마음도 피어나기는 했지만 끝내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은 쉽게 떨어지고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모가 해니에게 남긴 말이 마음에 남는다. "소설이 잘 풀려서 꼭 해피엔딩이 되면 좋겠다."

어쩌면 그 말은 단순히 소설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적어도 이야기 속에서는 이루어지게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적어도 해미의 소설에서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사랑을 이루고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소설과 다르다. 끝끝내 손에 쥘 수 없는 모래 같아서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 오해로 남겨진 감정들 차마 잡지 못한 손.. 그 모든 것들이 아득한 바람이 되어 가슴을 할퀴었다.

세상에 선의의 거짓말이 있다면 난 두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짓말, 그리고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짓말.

해미의 거짓말이 첫 번째였다면, 선자 이모의 침묵은 두 번째였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은, 결국 거짓말 없이 마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설령 상처를 남기더라도. 그게 설령 끝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예고 없이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릴 것을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언니의 티셔츠를 훔쳐 입고 소풍을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언니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 일부러 언니를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엄마가 언니에게 시킨 심부름을 내게 떠넘겨도 짜증을 내지않고 다 해주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언니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기회가 더이상 없는데 한수에게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불쑥 화가 났다. 너무 불공평해. 불현듯 나는 줄곧 내가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자 한없이 서글퍼졌다. 열네 살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나처럼 고통스러웠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인간이 나라는 걸 아아버렸기 때문에. 그건 내가 처음으로 또렷하게 마주한 내 안의 악의였다.
"이모,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뭔가를 하려는 바보 같은 마음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나는 내 하얀 운동화 위로 녹아서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시무룩이 바라보다가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햇따.
"간절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그 행간에 잔잔히 흐르던 격정과 애달픔을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자 이모가 첫사랑의 이름을 듣는다면 동요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숨기려해도 감춰지지 않는 게 사랑일 테니까. 봄볕이 나뭇가지에 하는 일이 그러하듯 거부하려 해도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게 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 무엇이든 움켜쥐고 흔드는 바람처럼 우리의 존재를 송두리째 떨게 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

 

 

 

우재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곤 했지만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처럼 착각하지만 대개 그것들은 서글플 만큼 빨리 옅어진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그렇게 되기까지 우재의 존재가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우재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보폭으로 내 삶에 걸어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사실은 내 마음을 환하게 하면서 동시에 어둡게 했다.

 

 

 

이제 와서 보면 선자 이모가 돕고 싶었던 건 내 소설 속 두 주인공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모가 돌아오고 족발을 같이 맛본 후 이모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 말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만 들을 수 있게 귓속말로 "소설이 잘 풀려서 꼭 해피엔딩이 되면 좋겠다"라고 속삭였으니까.

 

 

 

"해미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보잖아? 그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하지만 가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느낀 모멸감을 되갚아주기 위해 인적이 드문 새벽 일부러 찾아와 똥을 누고 간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 똥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아무리 인간에게 한꼐가 있다 해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토록 모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네 입을 통해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랑의 말이 가득한 편지였어. 너의 말로, 보다 분명하고 선언적인 말로 듣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열렬한 고백들이 거기에 적혀 있었지. 우리는 단 한 번도 세상의 많은 이들처럼 뜨거운 고백을 주고받지 못했잖아. 네게 듣고 싶은 말이 있어도 묻질 못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른 말로 대신해야 했어. 널 향해 꺼지지 않는 숯처럼 타오르는 마음이 너를 상하게 할까봐, 너를 세계에서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까봐. 너의 손에 깍지를 낀 채 걷고, 너의 긴 속눈썹에 입술을 갖다대보고, 네 향긋한 품에 내 얼굴을 묻고 잠드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으면서도, 나는 네 마음을 그저 짐작하고 내 마음을 조심스레 암시하면서 두려워만 하다가 너를 잃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네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는 죽고 싶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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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에서 다루는 철학적인 문제는 이미 여러 SF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다루어진다.
그러나 미키7에서의 차별점이 있다면,
복제인간이 단 한명. 미키 뿐이라는 것이다.
작품속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미키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넌 죽어도 그냥 되살아나면 되잖아?"
이런 따위의 말로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장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그야 당연히 이런건 인간의 모순성이니까..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이건 참 지독한 일이다. 진짜로 지독해서 못견딘다...
어쨌던 이러한 태도는 절친과 심지어 여친마저도 미키의 진짜 내면의 모습에 공감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미키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일삼는 베르토...
죽음에 직면한 미키를 안타까워하지만 곧 다음 새로운 미키를 기다리는 여친...
미키는 그러나 그러려니한다. 미키는 그렇게 사실 잘난 존재도 아니다.
그리 똑똑하지도 않으며 피지컬적으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묵묵히 자신에게 처해진 환경, 그리고 점진적으로 억울해지고 답답해지는 상황속에서
무언가 주인공답게 멋지게 상황을 해결한다던가 그런 것은 없다.
그는 바보같은 행동들을 얼렁뚱땅 하면서도 그저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무언가 어리숙하고 부족한 모습임에도, 주변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하면서도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나에겐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특히나... 미키2가 죽을 때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헬맷을 벗어버리는 장면은 너무 슬펐다...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미키3에게 다음을 맡기는 미키2.
어쩌면 미키2는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았을 수 있다.
그저 이것으로 미키2의 유일한 존재이고, 미키3은 다른 개체임을 이미 자각하고
그의 삶을 울부짖으며 마무리 지었을 수도 있다.

 

 

 

한편 이 책을 읽으니 옛날에 내가 친구를 위해 써보았던 아짱여행기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아짱여행기의 JS싸이언쓰 대표는 베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아짱에게 분자단위로 재조립된 인간에 대해 언급하며
그래도 갈것이냐 겁을 준다. 이에 대해 아짱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맞받아쳤고, 이에 JS대표는 수긍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짱은 베타로 되돌아가는 것을 택했을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소설상의 설정상 단일하게 존재하는 의식(또는 영혼?) 완벽히 이동한다는 설정(영화 아바타를 상상해보라)이므로 J대표는 단지 아짱에게 복제본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겁을 준 것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아짱은 어느 세계선에 존재하든 오리지날 아짱이다.
아짱은 똑똑하니까. JS싸이언쓰 대표가 애초부터 궤변을 늘어 놓는 다는 것을 어쩌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내 친구 아짱은 어디에서든 유일한 존재니까.

 

 

 

미키7과 아짱여행기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미키는 계속해서 죽고 다시 태어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지만
아짱은 자신이 온전한 상태로 존재할 것임을 알고 베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미키는 불완전한 존재로 남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괴로워하지만
아짱은 스스로의 존재를 믿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설정상의 차이가 아니라 작가가 인간의 자아에 대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결국, 미키7이 가장 강렬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의 존재는 단순히 물리적인 몸과 기억의 연속일까 아니면 고유한 자아가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까?
미키는 계속해서 죽고 부활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나는... 미키7의 설정이라면 미키1~미키8들은 완전한 독립적인, 개개인의 개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미키7은 단순한 SF소설이 아니라, 우리에게 인간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아짱… 나는 여전히 그녀를 떠올린다. 아짱이 택한 길은 내가 한때 꿈꾸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차마 나아가지 못한 길이었을까? 그녀가 베타로 돌아왔던 순간
나는 그 결말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거품처럼 사라진 꿈과 이루어지지 않은 길, 하지만 아짱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을 믿었고 나는 그런 아짱을 부러워했다.
미키처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아짱처럼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 정답인 것인지.
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 선택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키7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복제 인간의 이야기 그 이상을 담고 있었다.
나는 나도 어쩌면 미키2처럼 헬맷을 벗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아짱 베타와 함께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이쯤 되고 보니,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베르토와 내가 애초에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은 덕분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완벽한 친구란 있을 수 없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단점들을 이유로 사람들을 내친다면 그들이 가져다줄 기쁨과 행복 역시 누릴 수 없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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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았을 때 언니도 묘연했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 학생이었고 엄마 아빠는 중요하지 않
았다 중요한 건 급식을 누구와 먹는지 배드민턴을 누구와
치는지 같은 반 아이들이 어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지
언니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는지


 언니는 나보다 한 살 위고
 이효리처럼 노래 잘 하고
 춤도 잘 췄다


 언니의 친구들은 나를 몰랐지만 나는 알았지; 마리 제니
소이  그런 이름을 가진 언니들
 나도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고 싶었는데


 언니는 딱 한 번 나와 급식을 먹어주었다 내가 배식 당번
이 되었을 때 언니의 식판에는 요구르트 두 개가 놓였다 언
니와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하면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나를 길러낸 다음에도
 울퉁불퉁한 사춘기가 잘 접히지 않아서
 바나나우유랑 초콜릿 사 먹었다 모모코*가
"달콤한 것들로만 배를 채우고 싶어"  말할 때는 솔직히 좀
감동이었다


 나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고집했다 바구니는 잡동사니
로 꽉 채웠다 왠지 마음이 든든해지니까


 그리고 넘어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조심한다고 했는데
 구슬을 너무 많이 꿴 팔찌가 툭 끊어지듯


 나를 쏟으면 개중에 몇몇은 분실했다


 나는 속이 상해
 언니 때문에 진짜
 속상해 죽겠다 언니만큼이나


 여름도 오지 않는데 나는 자꾸 우거져 거대해져 가려운
부위가 점점 번져 비가 내리면 진흙과 돌부리를 그냥 지나
치지 못한 자전거가 나둥그라지고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
이 다치고


 이제 작은 상처는 돌보지 않게 돼


 바깥은 라일락이 폈다는 향기로운 소문으로 가득했다


  이때까지 나는 잘도 말라죽지 않았구나 무심코 거울을 봤
다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꽃을 좋아하는
 언니가 서 있엇다 비가 그치고 묽어진 얼굴로


 흰 
 꽃잎
 한 장 나부끼지 않지만 언니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의 가지가 되어 주었다




*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주인공.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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