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에 이어 '일의 기쁨과 슬픔'도 읽었다. 이 책은 군대에서 일과가 끝나고 먹는 라면, 회사에서 퇴근 후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라면처럼 술술 입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맛이다.

 

첫 번째 단편인 '잘살겠습니다'는 나이 많은 회사 동기 언니의 결혼과정을 다루는 이야기다. 빛나라는 인물은 매우 순진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빛나는 동기지만, 가까운 친구라기엔 애매한 어정쩡한 관계 속에서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화자를 지치게 만든다.
이러한 존재는 회사에서 특히 그 빛을 발하는데, 나같은 성격들의 사람들로 하여금 복장 터지는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을 유발하곤 한다.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나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들어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곤 한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사실은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존재조차 잊고 있던 화자는, 청첩장을 달라는 빛나의 말에 '동기 1호 결혼 커플을 축하하는 청첩장 모임'으로 퉁쳐 만나려고하지만,
빛나는 그녀를 내심 좀 더 가까운 존재로 여기었는 듯 1:1로 따로 만날 것을 제안한다. 
에비동을 특 에비동을 시켰기 때문에 새우가 더 많이 나온 것인데 새삼 놀라는 그녀였고
전세계약을 하며 확정일자 조차 모르고 결국 이중계약 사기를 당해버린 그녀였고
끝내 1:1로 밥을 얻어먹어놓고는 결혼식에 등장조차 안한 그녀였다. (그리고 축의금조차 내지 않는 넌센스 그 자체였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 주려고 그러는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는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화자는 그녀에게 제대로 이 현실과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철저히 빛나의 결혼식 선물을 준비한다. 그동안의 밥값, 커피값에 근거한 정확히 계산된 간단한 편지를 곁들인 올리브영에서 산 만이천원어치의 선물을 준비했다.
딱 그만큼의 선물로, 빛나에게 세상의 룰을 가르쳐 주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빛나는 그 선물을 받고 감동을 받았는지 편지와 선물을 사진찍어 본인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다.
어쩔 도리가 없다.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려 했던 화자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고, 빛나의 순진함은 또 한 번 화자의 속을 긁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떡을 씹으며 빛나가 잘 살길 바란다. 바보 같고 어리숙하고 때론 짜증나지만, 그래도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남아 있다.
이 단편의 묘미는 여기 있다. 빛나를 향한 화자의 분노와 연민,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감정은 마치 우리 모두의 관계 속 갈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절대적인 악과 선은 없다. 웃프게도... 어쩌면 그녀는 화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나 지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답례로 받은 떡들을 먹으며 빛나가 부디 잘살기를 희망한다. 바보들이 참 밉다. 밉지만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순진한 마음은 부정할 수 없고 그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잘 살겠습니다'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빛나는 우리의 과거 모습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미워할 수 없는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녀는 답답하지만 밉지 않고 어리숙하지만 착한 마음만큼은 응원하게 된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우리는 항상 물질적인 것이든 마음인 것이든 공평을 추구한다. 잘 살겠습니다의 화자의 말대로 딱 그 값어치만큼으로 세상이 정말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그러나 세상은 사실 주는 만큼 받는 세상이 아니다. 어떨 때는 내가 더 주기도 하고, 내가 더 많이 누군가로부터 받기도 한다. 세상은 엔트로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아무리 빛나를 가르치려 들어도 소용없다. 사람은 바꿀 수 없고, 빛나는 자신이 가진 정보와 역량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한 마음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혼자 끙끙앓으며 분노를 해보았자. 화자만 손해일 것이다. 나라면... 그게 그렇게 화나고 힘들다면 그냥 털어 놓는게 어떨지 싶다. 친한 동료면 좋고, 친구여도 좋다. 부정적인 감정은 빨리 소모해서 없애버리고 싶다. 그래.. 그냥 뇌의 화학적인 반응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잘 살겠습니다'의 이야기는 단순한 불평이나 푸념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관계의 복잡한 본질을 마주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진다. 빛나는 화자에게 끊임없이 분노를 안겨주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순진한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연민을 자아낸다. 그녀가 가진 부족함은 화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부족함 안에 담긴 순수함은 쉽게 미워하기 어렵다.

 

 

작가는 아마도 세상에 완벽히 공평한 교환은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것들은 저울 위에 올라가는 즉시 균형을 잃고 그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된다.
빛나는 화자의 기대와는 달리 이 불균형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빛나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만든다.
나 역시 살면서 이런 빛나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때로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속이 끓어올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들이 얼마나 하찮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상대가 아니라, 내 안의 기대와 욕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잘 살겠습니다'의 마지막에서 화자가 빛나를 향해 잘 살기를 바라는 장면이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성장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가르치려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덜 힘들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빛나는 아마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당황하게 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엉뚱한 감동을 주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화자도 언젠가 자신의 노력과 분노가 그리 대단치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불균형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그 답은 각자의 몫이지만, 어쩌면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냥, 잘 살면 되는 것이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회사에서 좋아하는 여자 동료 지유가 남편과의 사별 후 후쿠오카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지훈이 단숨에 달려가 3년만의 재회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욕 온천탕이라는 장소가 주는 긴장감, 둘 사이의 기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지훈은 결국 지유와의 하룻밤 계획이 실패했다. 나름의 계획을 완전히 지유에게 간파당했고,
지훈이 작전에 실패하고  홧김에 '이 씨발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라고 말하며 찌질하게 울며 잠드는 장면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왠지모를 통쾌함과 우스꽝스러움에 웃음이 나게 한다.
둘 사이가 진전이 있으려면 지훈이 어떤 태도를 보였어야 했을까?
기본적으로 지훈은 나름대로 훈남 스타일로 묘사된다. 마음속의 독백 장면에서 나름 그는 그동안 여자들을 꼬시기 위한 작전들과 여자들이 본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오만과 자만을 가지고 생각한다. 만약 지훈이 나였고, 정말 지유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 보았다.
우선 3년만에 만난 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른만큼, 지유는 많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고 그동안의 공백이 있기에 더욱 신중히 만났을거라 생각한다.
애초에 그럴거라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비중을 더욱 높였을 것 같다. 잠깐 밥이나, 반주정도만 곁들이며 시간을 보내고
나름의 혼자 일본여행을 추구 했을 것 같다. 뭐... 가서 만나보니 지유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에 다시올 2번째, 3번째 후쿠오카를 기약하지 않았을까?
설령 그런 긴장감이 연출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곧 이에 대한 결과로써 내가 실망하게 되는 상황을 마주한다 하더라도 지훈처럼 분통을 터뜨리진 않았을 것 같다.
마치 그게 마지막 기회였던 것 처럼 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지훈은 공격력 스탯만 잔뜩 올렸고 방어력 스탯은 하나도 올리지 않은 게임 속 캐릭터 같다.
매우 공격적으로 대시를 하지만, 한수 위에 올라와있는 사람의 공격을 받고는 처참하게, 비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나는 어릴적에 아버지에게 항상 '겸손하라, 숙일줄 아는 사람이 되라'라는 말을 듣고 커왔다. 그리고 여전히 그 말을 100은 아니어도 90은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겸손과 숙이는 태도는 어릴 적엔 그저 당연한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인간관계의 핵심임을 깨닫게 된다. 지훈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그 교훈을 새삼 떠올렸다.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 없이 얻으려는 것은 모래 위에 쌓은 탑과도 같다는 것을 말이다.
지훈이 후쿠오카에서 얻은 경험은 어쩌면 실패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에게 필요한 자각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단순히 지유를 만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관계란 혼자서 완성할 수 없는 퍼즐 같은 것이다. 나의 조각이 아무리 정교하고 화려하더라도 상대방의 조각과 맞물리지 않는다면 결국 그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지훈의 모습에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관계에서 종종 저지르는 실수를 발견했다.
지훈에게는 상대방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겸손히 상대를 바라보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그 첫 걸음이 필요했다. 그것이야말로 후쿠오카에서의 실패를 진정한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후쿠오카에서의 지훈처럼 우리도 때로는 삶의 작은 실패를 통해 더 나은 내가 되는 길을 배운다. 이번 단편이 지훈과 나에게 남긴 것은 바로 그런 성장의 기회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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