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외계인이 오직 너를 위해 2만 광년을 날아왔다면 그 외계인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거야. 그런데 만약 그 외계인이 전 애인과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면? 그리고 전 애인의 모든 단점이 싹 사라지고, 그 대신 X보다 훨씬 좋은 성격을 가졌다면 어떨까?
이쯤 되면 마음이 살짝 흔들리지 않을까? 고작 전 애인보다 더 나은, 아니, 아주 완벽한 성격을 가진 존재라니. 게다가 그 존재가 네 곁에 있기 위해 우주 끝에서부터 날아왔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이 소설은 로맨틱한 판타지와 기묘한 과학 소설의 경계선에서 펼쳐지는 이상한 사랑 이야기야. 읽다보면 어느새 현실 감각은 저 멀리 떠나고 너도 모르게 그 외계인에게 마음이 끌려버릴지도 몰라.

 

 

 

세상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습관처럼 계속 만날 필요는 없어, 멈춰도 돼. 이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들면 언제든 멈추는 거야.

 

 

  한아는 친구 유리가 이렇게 말했을 때 공감했어. 그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렸지. 경민에 대한 불만이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온거야..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도 이런 상황 꽤 흔하지 않아? 친구와 애인이 있는데 나에겐 둘 다 좋은 사람인데도 그 둘이 뭔가 좀 안 맞는 느낌이 들 때 말이야. 친구는 친구대로 애인에 대한 불만이 많고 그런데 네 입장에선 둘 다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매해지는 그런 상황 말이야.
한아는 가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곤 했을거야. '경민이 조금만 덜 무심했으면...' 혹자는 '가끔이라도 내 말을 좀 더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때마다 "야 그만 만나, 멈춰도 돼"라는 유리의 말이 속삭이듯 떠올랐을 거야.
아니면 유리의 입장이 되어 본적이 있어? 친구의 애인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뭔가 그 커플을 바라보면 많이 어긋나있는 느낌이 드는 거지. 네가 만약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라면... 아마도 유리처럼 솔직하게 말할 거야. "야, 세상에 좋은 사람 정말 많아. 그냥 잠깐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때?" 하고 말이지. 물론, 그 말이 상대방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않겠지.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한아도 그런 상황에서 고심했을 거야. 경민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말이야. 우리도 때론 그런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게 되잖아. 그럴 때면 결국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한아가 유리의 조언을 귀담아듣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보면 어쩌면 그녀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실루엣만으로도 오래된 남자친구를 알아볼 수 있었고, 달려가서 안길 정도의 애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민을 사랑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한아는 그 순간에도 체념하듯 생각했다.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다.

 

 


하 정말... 한아는 어쩌면 헤어졌을 때 실컷 같이 욕해줬는데 나중가서 다시 사귄다고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 (농담이고) 한아는 경민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경민의 실루엣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어. 경민이 거기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한아는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내생각엔 애정이라는 감정이 묘하게 복잡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부분 때문인 것 같아. 분명히 경민의 단점은 그녀를 서운하게 하게 만들고 불만스럽게도 만들었지만... 모처럼 다시만난 그 순간만큼은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을거야.
그래서 한아는 스스로에게 체념할 수밖에 없었어. '아, 내가 아직도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랑이 예전처럼 열정적이거나 행복한 느낌은 아니었어. 오히려 체념에 가까운 애정이었지. 내 생각에 한아가 말한 체념이란 결국 이 사람의 단점을 다 알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거야.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분도 들지 않아?
어쩌면 체념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작가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걸꺼야. 우리는 누군가를 오랫동안 사랑하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보는 게 아니라 단점까지도 다 보게 되잖아? 그리고 그 단점을 받아들이기로 할 때 사랑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단순한 설렘이나 열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더 깊은 애정으로 말이야. 너무 당연한 소린가?
한아가 느낀 체념이란 그 깊은 애정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몰라. 어쩌면 경민을 향한 사랑이 한아를 힘들게 하면서도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을 거야. 이게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이 가진 특성의 일부 아닐까?

 

 

 

주영 -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취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경민 -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주영의 생각과 경민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주영은 세상엔 '거인'들이 있고 그들이 만들어낸 큰 흐름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휩쓸려 살아간다고 생각해. 스티브잡스나 일론머스크, 소크라테스를 일컫는 이 거인들은 그들의 재능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거지.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자신이 그 '거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을지도 몰라. 아마도 그 과정에서 많은 상상을 했겠지. 나도 이 거대한 흐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인생이 될까? 그러다가 결국 어쩌면 그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주는 아티스트에게 끌렸고 자신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태워보고싶은 깊은 내면이 있었을지두 몰라.
주영의 생각이 너무 염세적이라고 생각돼? 근데 우리도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봤을 거야. 아니 생각보다 많이 할지도 모르지 아주 거대한 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분야만큼은, 한국에서는 적어도...등등... 무언가 이루고 싶어하는 건 맞잖아? 우리가 하는 일에서 혹은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작은 물결이라도 만들어내고 싶다는 바람. 하지만 때로는 그 물결조차 일으키기 어려워 보이고 결국 큰 흐름에 휩쓸려 가는 듯한 느낌을 받지. 이러다 보면 나도 어느새 주영처럼 '내가 이 거대한 흐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구.
이런 주영과는 반대로 경민은 한아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해. 한아가 스스로를 진취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때 경민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지.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것들 소중함을 잊어버린 것들을 한아가 지키고 있다는 거야. 이 말에 한아는 큰 감동을 받았을 것 같아. 우리가 흔히 무시하는 작은 것들이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달았겠지.
경민의 이 말은 한아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느끼게 했을 거야. 음.. 사실 더 큰 가치라고 표현하기보단 정 반대의 가치라고 느껴서 놀랐을 것 같아. 그 '작은 자리'가 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더하는지 말이야.
그게 뭐가 대단하냐구? 더 들어봐 내 생각에 한아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내가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거인은 아닐지라도 그 흐름의 중요한 부분을 지키고 있는 거구나.' 한아가 지켜낸 작은 것들이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겠지. 좀 더 읽다보면 지렁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건데 그 부분을 읽어봐 그럼 더 이해가 잘 될거야~
주영의 깨달음과 경민의 말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우리가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일까? 그리고 그 기여는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이해해?

 

 

 

한아는 기가 막혔다. 이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증오스러운 얼굴을 빌려 쓰고서는? 한 번도 지구에 이런 걸 초청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뻔뻔스러운 외계 생물 같으니.

 

 

 

  난 이 장면 진짜 웃겼어. ㅋㅋ 자, 한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황당한 상황이지. 외계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것도 자기 전 남자친구 경민의 얼굴을 쓰고선 "사랑해"라고 고백을 하는데 한아 입장에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야. 특히나 그 경민이 이미 한아에게는 이런저런 감정의 골칫덩어리였으니까 그 얼굴로 외계인이 사랑을 속삭이니 기가 막혔겠지. 외계인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순간에도 한아는 경민의 그 익숙한 얼굴이 너무 싫었던 거야. 그래서 그 외계인 경민에게 내심 임시완이나 박보검의 얼굴로 바꾸는건 어떠냐고 제안한 건지도 몰라.
그런데 더 웃긴 건 한아가 이 외계인과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는 거야. "만약 지구별을 폭파하면 파혼하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지. 한아는 스스로 이 상황이 코메디 시트콤 같다고 느꼈을거야. 마치 거대한 우주 스케일의 연애 게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겠지. 거기에다가 "파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참 재밌어. 이제 연애부터 시작인데... 사실 한아는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거겠지 라고 생각했어.

 

 

 

"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럭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외계인 경민이 한아를 관찰하면서 느낀 감정이 정말 재밌어. 누군가 보면 그냥 지나칠 이야기지만 나는 엔트로피라는 단어에 꽂혔어. 정세랑 작가는 엔트로피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아. 가끔씩 보았거든. 엔트로피라는 말,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냥 '혼돈'이란 뜻이잖아? 외계인 경민이 보기에 한아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존재였던 거야. 즉 경민의 망원경에는 우주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혼자서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인간, 바로 한아가 보였던거지!
생각해봐, 지렁이를 조심스럽게 화단으로 옮기는 사람이라니! 이건 정말 일종의 히어로라고도 할 수 있어. 지렁이 한 마리를 구하면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질서 있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한아는 거대한 우주의 시선에서 보면 정말 작은 존재지만 그 작은 손길로 세상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야.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진 지렁이를 구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외계인 경민의 눈에는 그게 엄청나게 특별한 일로 보였던 거지.
그리고 고래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한아의 마음씨! 아마 경민은 그 부분에서 정말 감동받았을 거야. 인간은 파괴적인 종족인데 한아는 그런 본능과는 동 떨어져 있어. 마치 우주에서 엔트로피에 맞서는 작은 성냥 불꽃 같은 느낌이랄까? 경민이 한아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아마 그런 것일 거야. 이 지구라는 혼돈의 행성에서 어찌 이런 따끈한 마음을 가진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지 경민은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거야.
이렇게 보면 경민이 느낀 감정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경외심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네. 엔트로피가 우주에 널리 퍼져 있는 혼돈이라면, 한아는 그 혼돈 속에서 작은 질서를 만들어가는 존재. 그런 한아를 보며 경민은 그냥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우주를 뛰어넘는 감동을 느낀 게 아닐까 싶어. 너무 오버인가? 그래도 한아가 지렁이를 구할 때마다 고래를 형제자매로 여길 때마다 경민의 감정은 더 커져갔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외계인이 인간에게 반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적인 거시적 관점에서 본 한 인간의 작은 행동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의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야. 경민에게 한아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주의 혼돈 속에서 빛나는 작은 별 같은 존재였던 거지. (촉촉...)

 

 

 

"하지만 놀라게 하지 않고 만나고 싶었어. 너의 공간에서 함께 있고 싶었어. 자연스럽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만남이니까, 자연스러움을 가공하고 싶었어."

 

 

 

한아를 만나기 위해 외계인 경민이 했던 고민과 배려는 진짜로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야. 이 외계인 경민은 처음부터 한아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어. "자연스럽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만남"이라는 말이 딱 경민의 심정을 표현하는 거지. 우주에서 지구까지 오는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더 어려운 건 그녀를 당황시키지 않고 편하게 다가가는 거였을 거야... "어떻게 해야 그녀가 나를 경계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이상한 스토커나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오랜시간 우주를 뚫고 온 거야.
그래서 경민이 선택한 방법은 뭘까? 바로 그녀의 원래 남자친구 경민의 모습을 빌리는 거였어. 이건 진짜 묘수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모습을 빌린다는 건... 어찌 보면 아주 교묘하고도 슬기로운 선택이야. 나도 본 받아야겠어. 근데 이게 또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겠어? 대끔 그냥 "안녕? 나는 네 남자친구의 외계인 버전이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경민의 모든 걸 다 똑같이 흉내 낼 수도 없고.
실제로 디테일한 흉터를 재현해내지 못해서 한아에게 실제로 들키기도 했지. 그래서 경민은 엄청난 신경을 썼을 거야. 그가 한아의 경민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 아마 원래 경민이 좋아하는 음식, 말투, 행동 패턴까지 전부 철저히 분석했겠지. 하지만 외계인이니까, 인간의 미묘한 감정이나 표현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야. 나는 그래서 소설속에 나오진 않았지만 "아, 이건 좀 경민스럽지 않았어!"라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장면도 상상해보았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민은 한아와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처음엔 자신의 외계인임을 숨기려 했어. 외계인인 걸 들키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던 그 노력, 그 진심은 정말 귀엽지 않니? "자연스럽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만남"을 만들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민했을까? 아마도 그는 지구인들의 '데이트'가 뭔지, '사랑'이 뭔지, 그리고 그 모든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방법이 뭔지 그 우주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싸맸겠지.(원래의 인간 경민이는 제대로 자신에 대해 인수인계도 안하고 가버린 모양이야)
공교롭게도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하필이면 경민을 탐탁치 않아하는 유리에게 달려가서 프로포즈를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애원까지 했지만(그러나 왠지 달라진 경민의 모습에 유리는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지 ㅋㅋ)
결국 경민은 한아를 만나기 위해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어. 하필이면 장인어른, 장모님께 특별한 기술로 만든 다이아반지까지 선보이다니... 어쨌든 이러한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그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복잡하고도 대단한 것임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도 몸소 깨닫게 됐겠지.

 

 

 

"산속의 서늘한 공기가 눈물을 금세 마르게 했다. 하지만 한동안은 속으로, 속으로 눈물이 흐르겠지. 내 안쪽도 그런 빛나는 돌이라면, 눈물에 다 녹아버릴 거야. 한아는 식어버린 수프 컵을 내려놓았다."

 

 

 

원래 경민이 우주여행을 떠나면서 한아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로운 방향으로 탐색해나가는 여정이었어. 그러나 한아는 자신 옆에 남겨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경민 외계인 버전을 보며 큰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그동안 경민에 대해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나, 그동안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와 어떤 시간을 보내온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을거야...
산속의 차가운 공기처럼, 한아의 마음도 차갑고 냉정하게 변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눈물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던 진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 한아는 겉으론 눈물조차 나오지 않지만, 그 속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거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은 흘릴대로 다 흘리고 감정소모는 할대로 다해서 더이상 흘릴 눈물도, 감정도 없이 그냥 내면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 말이야... 넌 그래본적 있니?

 

 

 

"백날을 생각해봤자 답은 똑같을걸요.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난 따라갈 거야, 내 아티스트."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해. 비슷한 걸로 난 그 말을 좋아해. 평범한 며칠을 보내는 것보다, 어떤 순간은 몇 분의 순간이 매우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고. 비슷하게 상대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이지? 아티스트를 따라 우주로 따라간 주영에 대해 혹시 철없다는 생각을 해보았어? 다소 비현실적인 팬일수도 있지. 소설이니까 :) 사실 주영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과 직관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이야. 
누군가를 지켜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성비가 너무 좋은 것 같지 않아? 주영은 그런 인물이야. 상상해봐. 주영의 이런 팬심은 뭐랄까.. 어떤 아이가 좋아하는 슈퍼맨이 실제로 하늘을 날고 있다고 굳게 믿는 것과 같아. 그 팬심이 어쩌면 세상의 모든 논리나 진리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더 뜨겁고 더 특별할 수도 있잖아!

 

 

 

한아는 이제야 깨닫는 것이었는데, 한아만이 경민을 여기 붙잡아두던 유일한 닻이었는지 몰랐다. 닻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약하고 가벼운 닻, 가진게 없어 줄 것도 없었던 경민은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고 종국에는 지구를 떠나버린 거다.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을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닻이 없는 경민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까?
쉬운과정은 아니었으나 거기까지 이르자, 한아는 떠나버린 예전의 경민에 대한 원망을 어느 정도 버릴 수 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한아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커다란 변화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야. 너도 책을 읽어보았다면 잘 알겠지만 한아는 그동안 경민이 떠난 것에 대해 많은 원망과 슬픔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랬던 그녀는 이 장면에서 이 원망의 감정을 마침내 내려놓게 돼.
한아가 깨닫게 된 건 스스로를 '닻'이라는 메타포로 칭하면서야. 그녀는 경민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려 했지만 사실 그 닻은 너무도 유약하고 가벼운 존재였어. 경민은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걸 애써 외면하고 있던거지.
경민(구)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그것은 한아의 사랑만으로는 채울 수 없던거야.. 한아는 결국 경민이 떠난 이유가 자신 때문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단순히 사랑의 부족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돼.
이 깨달음은 한아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을 거야. 그녀는 경민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경민을 붙잡아두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거지. 그동안의 원망은 단순히 사랑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제 한아는 그 집착을 놓아줄 수 있게 된 거야.
경민은 그의 자유로움 속에서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제 한아도 그를 놓아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거지. 이 깨달음은 한아에게 있어 큰 성숙을 의미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한아는 그동안의 슬픔과 원망을 넘어서서 진정한 평화를 찾게 되는 거야.
한아는 이제 경민을 자유롭게 떠나보내며, 자신도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쳤을 거야. (근데 솔직히 마지막에 죽을때 다 되어서 돌아온건 좀 아니었던 것 같아... 모야...얘? 저기요... 다시 가주세요)

 

 

 

중요한 결정을 언제나 한아에게 맡겨주는 게 좋았다. 불안한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인 것도, 흔한 방식으로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될까봐 걱정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 방향으로는 걷지 않게 될 걸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은 책이었어!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자연스레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퇴근 후에 이 책을 읽는 동안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사실 거의 하루만에 다 읽은 것 같아)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느낌? 일종의 도피처 같았달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아가 인간의 몸으로 죽어갈 때 경민이 한아에게 우주를 견딜 수 있는 몸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잖아?(사실 이게 이미 몰래 처리된 계약이었단 점이 웃프기도 했어 한아가 경민(구)에게 계약서를 잘 읽었을 것을 탓할 때 그것이 복선일 줄이야..)
그 둘은 거의 반쯤은 영생의 몸이 되었을 것이고 그들이 유리 부부와 함께 우주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니까 나는 '은하철도 999'가 떠올랐어.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가 메텔과 함께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열차에 올라타고 각기 다른 사연이 있는 행성들을 돌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경험하잖아?(사실 철이의 여정에서 각 행성들에서 겪는 사람들의 사연에는 슬픔과 애틋함이 참 많아.. 그래서 사실 은하철도999가 어린아이들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지)
경민과 한아도 똑같이 그런 독특한 행성들을 방문하게 되겠지. 지구를 모방하여 어설프게 만든 행성에 들러 그곳에서 날개가 돋아난 행성 운영자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상상해봐. 그리고 우주의 끝까지 가서 어떤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까? 그리고 아티스트와 주연 일행과 다시 마주쳤을까? 어쩌면 둘은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해서, 평범하게 결혼해서 잘 살다 갔을지도 몰라. 재밌지?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 왜 작가는 하필 막바지에 '우주를 견딜 수 있는 몸(반쯤 영생?)'이라는 포인트를 넣었을까? 난 그게 단순히 인간이 영생을 꿈꾸고 갈망하기 때문에 넣은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해. 경민은 외계인이어서 오랜 수명을 지녔고 반면 한아는 인간이니까 고작해야 100년 남짓 살 수 있잖아. 수명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차이도 많을 거고. 하지만 우주를 견딜 수 있는 몸으로 바뀐다는 건 결국 경민과 한아가 동일한 존재로 서로 닮아간다는 해피엔딩을 예고한 게 아닐까 싶어. 이런 시각으로 보니 인상적이지? 그렇다고해.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종족(?)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닮아가고 함께 우주를 탐험하며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거잖아. 난 이런 모든 상상이 한아와 경민의 여정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어린 왕자가 말을 이었다.
"만약 누군가 수백만 개, 수천만 개 별 중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다면, 바로 별들만 쳐다봐도 행복할 거야. 속으로 '저기 어딘가에도 내 꽃이 있겠지'하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렇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 봐. 이건 그에게는, 별들이 모두 갑자기 빛을 잃을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 이게 중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진 뒤였다.
-어린왕자 中-

 

 

 

어린왕자에게 그 하나뿐인 꽃은 우주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존재였지.
외계인 경민이 고향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아마도 한아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을 거야.
장미가 없다면 그 많은 별들이 어린왕자에겐 의미가 없던 것처럼 아마 그런 마음으로 한아를 생각했어. 수많은 별들 속에서 단 하나의 꽃이 가진 특별함처럼 경민에게 한아는 우주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존재였던거야

 

 

 

-끝-









비닐봉지들을 모아 꽃모양으로 접어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역시 보고 싶네, 보고 싶잖아.
그렇지만 뭔가 달랐다. 원래의 경민을 보냈을 때의 그런 몸이 간질간질하고 신경이 쏠리고 불안해지는 보고 싶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해를 헤매고 있어도 이어져 있는 보고 싶음이었다.
기다리는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이건 또 새로운데? 한아는 계단에 앉아 생각했다.

 

 

 

안락하고 평화롭지만, 고민 없이 출아법으로 끝없이 자기 분열하는 것에 이제 모두 질린거야. 이주율이 순식간에 늘 거야.

 

 

 

한아는 문득 기분이 묘해졌다. 경민의 고향 사람들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게 될 우주 곳곳의 존재들을 생각했다. 집단 무의식 때문에 경민은 그 사랑도 희미하게나마 감지하고 함께 느끼고 또 꿈꾸고 있을 텐데, 질투가 났다.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질투인지, 아니면 그런 수많은 사랑의 지류들을 함께 느끼고 싶은 질투인지 분명치 않았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 좌표에는 예전에 기회와 가능성, 평행 우주를 거래하는 별이 있었어. 하지만 내부로 폭발해서 사라지고 없지. 말이 좋아 가능성이지, 가능성이야말로 너무 압축된 개념이라 잘못 다루면 위험해

 

 

 

멋진 날개지? 근데 돋을 때는 엄청 아팠던 모양이야. 최근에 저 사람이 자서전을 냈는데, 거대한 어금니가 어깨에서 돋는 것 만큼 아팠대.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고통을 겪고나서 더이상 자신을 만든 지구 애호가에게 복종하길 거부하고 체제 전복을 일으켰어. 지금은 저 행성의 운영자야.

 

 

 

커다란 오렌지 사탕 같은 태양이 지는 시간에 입안에 남은 소금기에 끌려 데킬라를 희석시킨 칵테일을 마시러 갔다. 밤늦게 돌아가며 키스하면, 연인의 입술 사이에 우주가 있었다.
돌아오고도 한참 동안,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건 좋았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상에서 만나요  (5) 2024.10.23
이선 프롬  (4) 2024.10.09
밝은 밤  (0) 2024.08.22
덧니가 보고 싶어  (0) 2024.08.11
보건교사 안은영 (팬픽션)  (0) 2024.08.02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다 읽은 뒤에는 엄마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할 생각이다.(물어보니 책을 선물한지는 꽤 되었는데 아직 반도 못읽었다고 한다.....) 밝은 밤은 어떤 호수공원에서 밀려오는 물안개같은 희끄무레하면서도 촉촉한 아픔이 서서히 내게도 다가오는 책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여러 세대에 걸쳐져 내려오는 아픔이 마음 깊이 스며드는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잔잔히 그리고 서서히 자라나는 마리골드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세대의 굴레 속에서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는 할머니와 엄마, 지연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정말정말 오래도록 머물렀고 긴 시간 끝에 고심하며 글을 써본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 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듯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감스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일하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 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지연의 엄마 미선은 이혼 후 홀로서기를 결심한 딸을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미선에게는 지연이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 바람 뒤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사회가 규정한 틀, 즉 '좋은 아내', '착한 딸',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는 삶이 얼마나 험난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 틀을 벗어나면 맞닥뜨리게 될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가 딸을 향해 얼마나 잔혹하게 다가올지를 미선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미선은 딸을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 사랑이 두려움으로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벽과 장애물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침묵과 포기. 그것이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기에, 미선은 딸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딸이 그 틀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딸의 자유와 행복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미선은 딸이 자기 길을 가겠다고 선언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왜냐하면 딸이 맞이할 세상은 그녀가 알고 있는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고, 그 다름이 미선을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딸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자신의 방식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딸을 그 틀 안에 가둬두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갈등 속에서 헤맸다.

결국, 미선은 자신이 딸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보호가 오히려 딸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괴리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을 감싸려 했던 그녀의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벽이 되어버렸다.

 

 

그때의 나는 사람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서울에서처럼 친구와 한참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나에게 결혼은 그런 것이었지만, 더이상 그런 관계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들지 않았다.

 

 

영옥은 딸 미선과 오랫동안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서로를 지켜보며 살았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드물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오해와 침묵은 두 사람 사이에 깊은 골을 남겼다. 그 골이 너무 깊어서 이제는 그저 서로를 향한 단절된 시선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손녀 지연과의 만남은 서로에게 뜻밖의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희령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연과의 관계는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이자 위로다. 지연은 영옥의 눈에 자신이 살아온 험난한 길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듯했다. 영옥이 그녀가 손녀임을 깨달았음에도 계속 존댓말을 사용한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영옥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옥은 손녀를 판단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연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영옥은 자신이 딸 미선에게서 놓쳐버린 것들을 지연에게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영옥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고 그 무게를 손녀에게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지연이 자신을 통해 어떤 부담감이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영옥은 늘 손녀 지연에게 조심스러웠다. 아니 오히려 손녀와의 관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지연이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주며, 그녀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종종 `어르신으로 가르침을 얻는다, 지혜를 받는다`라는 표현을 듣곤 한다. 그러나 영옥은 지연에게 가르침보다는 공감을 주고자 했다. 지연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존중하며, 그녀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그저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깊은 이해와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쩌면 영옥에게 지연은 단순한 손녀 이상의 존재였고, 지연에게도 영옥은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준 듯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았고, 세대와 경험을 넘어서는 애틋함을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새비 아저씨와 새비 아주머니는 단순한 부부 이상의 관계였다. 그들은 서로를 진정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여겼다. 새비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남을 지배하려 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 사회는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쥐고, 아내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새비 아저씨는 그러한 사회적 관습에 반기를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위신이란 남을 억누르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고집이자 삶의 원칙이었다.

나는 이런 새비 아저씨의 모습에서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태도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안다. 시대의 흐름에 거슬러 오르는 일은 늘 외롭고도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시대였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었으리라..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때, 혼자만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결심은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안다. 나는 새비 아저씨처럼 아닌 것을 보고도 모른척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내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새비 아저씨.. 그와는 달리 삼천의 남편은 그 시대의 평범한 남성으로 살아갔다. (그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읽어보라) 그가 처음에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품고 삼천에게 다가갔었던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더 비극적인 인물로 만든다.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그의 사랑은 결국 세상의 압박과 기대 속에서 변질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사회적 요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무게에 짓눌려버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삼천의 남편이 겪었던 사회로부터의 가스라이팅은 단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구조와 깊이 맞닿아 있다. 그 역시 시대의 희생자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그는 평범한 사람일지언정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자신을 잃어버린 또 하나의 비극적 인물로 남았다. 그의 끝자락은 정말 우연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그가 선택한 일인 것일까... 나는 후자일 것이라고 믿는다. 역설적인 본인의 모습을 부정한...

 

 

그날 밤 꿈에 전남편이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그가 내게 준 상처도 잊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에 그저 행복해했다. 그의 큰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그를 안아보기도 했다.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을 때 어떻게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내 마음의 일부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오로지 그만이 내게 줄 수 있었던 친밀함을 갈구하고 있구나. 당연한 일이라고 되뇌면서 나는 조금 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새비 아주머니의 입장이었더라도, 나는 남편을 위해 그만큼 울었을 것이고 남편을 다시 만나서도 그만큼 행복했을 것이다. 전남편이 저버린 것은 그런 내 사랑이었다.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잃었는지 경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경쟁에서 나는 패자가 아니었다.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삼천의 가족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새비 아주머니가 일러준 대구의 주소로 향하던 그 순간, 소설 속에서 그녀의 마음이 표현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한없이 무거웠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왜 이 부분이 소설속에서 자세히 묘사가 안되었는지 잠시 고민했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그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유도한 작가의 의도인 걸까?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 삼천이 당시 어떤 마음을 느꼈을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줄거리를 조금 설명해 보자면, 과거에 반대로 새비 아주머니의 가족이 사상 의심자로 몰려 위기에 처해 절박하게 도움을 청했을 때 삼천은 며칠만 묻게해달라는 새비 아주머니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했다. 당시의 삼천은 그 '사상'이라는 것이 무거운 짐, 화살이 자신과 가족에게 돌아올까 두려웠고, 그 두려움은 그녀를 냉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사람에게 도움 청하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삼천의 마음속에는 죄책감과 후회가 뒤섞였을 것이다.

그 피난길을 걷는 동안 삼천은 자신이 했던 선택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과거에 느꼈던 두려움이 이제는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때의 거절이 얼마나 차갑고 잔인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삼천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행동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새비 아주머니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피난길에서 느꼈을 후회와 불안은 아마도 마른 땅에 내렸던 재섞인 빗물처럼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 새비 아주머니의 대구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은근한 희망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 비록 늦었지만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 말이다. 그 희망은 아마도 삼천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주었을 것이다.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채로 삼천은 피난길을 걸었다. 그 길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고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으려는 마음의 여정이다. 삼천은 그때 아마도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예측 불가능한지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진 빚을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 여정은 삼천에게 상처이자 치유의 길이었으며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새비아주머니와 재회한 뒤 모든 것은 옳게 되돌아갔다.

 

 

'넌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야.' 어느 날 말을 이을 수 없어 눈물만 흘리던 내게 지우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할게. 이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도 느끼며 살아.'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지우를 보며 알았다.

 

 

증조모가 집을 비울 때면 봄이는 동구 밖까지 가서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증조모를 향해 달려갔다. '너는 내가 왜 좋아?' 의아한 표정으로 봄이의 등을 쓰다듬는 증조모의 얼굴에는 늘 작은 서글픔이 서렸다. 자기에게 달라붙는 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투정하듯 말하는 증조모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증조모에게는 평범한 읾이 아니었을 것이다.

 

 

증조모 삼천에게 봄이는 단순한 반려동물 이상의 존재였다. 신분적 차별 속에서 오랫동안 상처받아온 증조모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아무런 조건 없이 따르는 강아지 봄이를 보며 작은 위로를 얻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감추어야 했던 연약함과 슬픔을 봄이 앞에서는 드러낼 수 있었다. 봄이가 삼천에게 달려와 안길 때마다 증조모의 마음속 깊이 숨겨둔 고독과 아픔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들 속에서도 삼천은 늘 자신의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것을 느꼈고, 자신을 아무런 이유 없이 좋아하는 봄이가 그저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상황이 급변하면서 삼천은 더 이상 봄이를 곁에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당 밖까지 쫓아오는 봄이를 보며 이제는 이 작은 생명이라도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그 결심에는 이 전쟁 속에서 봄이가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봄이에게 "이제 자유롭게 살으라"고 말할 때 삼천의 목소리는 비록 단호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애틋함과 슬픔이 묻어났다. 봄이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맞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 작고 충성스러운 생명이 자신에게 남아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바람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 바람을 억누르며 봄이를 놓아주려 했지만, 그 마음속에는 깊은 상실감과 외로움이 자리 잡았다.

봄이 역시 증조모의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동안 삼천이와 함께한 시간 동안,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을 통해 느낀 사랑을 봄이는 잊지 않았다. 삼천이가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터였다. 다만 봄이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슬픔을 어렴풋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봄이는 눈치껏 돌아섰다. 자신이 더 이상 삼천이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서려는 그 순간에도 삼천이를 지켜주고 싶다는 충성심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봄이는 거리에서 멀어지며 혼자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삼천이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봄이는 자신이 떠나면 삼천이가 더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삼천이를 위해 떠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돌아서며 느낀 그 상실감은 삼천이를 향한 마지막 충성이자,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봄이의 작은 희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밎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새각해서 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 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드록,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안정을 추구했던 그 시간동안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독에 갇힌 나무처럼 가지를 마음껏 뻗어나갈 수가 없었다. 고립되었다. .................(중략)................ 당신은 어째서 내 고통을 보지 않지? .................(중략)................ 체념했다. 그가 집에 없을 때 울다가도 그의 전화가 걸려오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목소리가 왜...?' 하고 그가 물으면 '응, 자다가 일어나서'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나. 나에게, 내 인생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어둠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자락 내려오득이 내게도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지연의 고뇌를 나는 여러차례 읽어보았다. 그녀가 생각한 인간의 삶이란 우주의 광활한 시간 속에서 정말로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더 절실하게 찾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짧고도 고통스러운 순간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하필이면 이토록 복잡하고 모순된 인간으로 태어난 걸까? 이 질문들은 나 역시 종종 스스로에게 던졌었다.

그래서 나 또한 참나무나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그녀가 느꼈을 깊은 회의와 아쉬움을 공감할 수 있었다. 만약 단순히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존재였다면 삶은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덜 복잡했을지도 몰랐겠지. 그러나 다행인건지 불행인 것인지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인간은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가하기도 하는 존재다. 지연이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자신의 몸을 만지며 느낀 감정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기에 이 짧고도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나만의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믿는다. 우주의 먼지가 어떤 배열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배열 속에서 사랑이란 아직 나로서는 다 이해하기 힘든 어떤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이 사람이든 어떤 일이든 어떤 꿈이든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을 찾고 싶다. 지연이 느꼈던 고독과 회의 속에서도 사랑이야말로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결론 지었다. 찰나 같은 인생 속에서 사랑은 아마도 가장 큰 의미를 가진 빛일 것이다. 그 빛이야말로 우리가 우주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이유이며 존재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지연은 어쩌면 그런 사람이 필요했으리라...고 나는 공감했다. 어쨌거나, 그런 짝을 찾는 일은 결국엔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찰나의 순간을 더 깊고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

지연이 이혼 후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 그것들은 아마 자신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그녀가 느꼈던 고통은 단순히 관계의 끝에서 오는 아픔을 넘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의문으로 이어진다. 왜 나는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 없는 걸까? 왜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지연의 이 질문들은 내게도 낯설지 않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모두 때때로 이러한 의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지연이 고통 속에서 시간을 직선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과거의 익숙한 구덩이로 계속해서 굴러떨어지는 느낌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다. 그 구덩이는 아마도 실패와 좌절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지연이 자신의 약함과 작음을 직시할 때 그녀는 아마도 그동안 억누르며 외면하려 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인정하기 어려워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는 순간일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의 장점으로 여겼던 인내심은 때로는 자신을 과도하게 몰아붙이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지쳐버린 그녀를 만들어냈다. 삶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수행해야 할 끝없는 일들로 가득 찬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을 때 지연은 자신을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존재의 증명은 항상 성취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 성취가 없을 때 자신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연의 이 생각을 읽으며 나는 그녀가 겪은 혼란과 절망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기준이나 성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강박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를 잊어버린다. 성취 없이도 그저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연이 느꼈던 고통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도 지연처럼 성취를 통해서만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이룬 것들이 사라질 때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연의 이야기는 나에게 진정한 가치란 성취나 외부의 인정을 넘어서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의 존재가 성취로 증명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정 반대로 살아가는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요즘 사회로부터의 완전 독립할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신 나만의 사랑을 찾고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고 싶다. 그 길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험난할지라도,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전남편에게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는 말을 즐겨 했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나 선택이라는 것 또한 커다란 환상일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식의 생각에는 분명 이점이 있었다. 그런 믿음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후회의 덫에서 구원해준다. 과거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의 고통이 없었으리라는 사고의 공회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속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건 일어날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전남편이 믿었던 시간의 관점(시간은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 같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며, 자유의지와 선택도 환상일 뿐이라는 생각)은 표면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의 외도에는 그 믿음이 얼마나 기만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종의 마음의 안식처처럼 꾸며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믿음은 인간의 후회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달래주며,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 어두운 이면에는 나는 그의 외도가 어떻게 그 믿음을 기만적으로 활용했는지를 느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말은 그저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었을지도...

어쨌든 이러한 시간관념은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진정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외도는 단순히 시간의 얼어붙은 강물처럼 거짓된 위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전남편은 자신의 불충실을 정당화하고 지연의 아픔을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치부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과 신뢰는 단순히 시간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얼어붙은 강물처럼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 그 말을 한다고해서 실질적으로 인간의 감정적 고통을 없애주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상처와 갈등을 무시하는 행동 아닐까? 우리는 후회와 아픔 속에서도 스스로를 직시하고, 사랑과 신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며 성장해 나가야 한다. 내 생각에 어쨌거나 우리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 순리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타임머신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시간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굳이 말로써 표현해보자면..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통해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길어졌는데, 어쨌거나 그의 믿음은 그저 시간의 한 측면을 묘사할 뿐 지연의 진심과 상처를 담아내지 못한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라 해야하는게 옳겠다. 그는 결국 그 믿음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지연에게 남긴 상처를 덮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전남편이 근거로 내세운 '이미 정해져 있다'라는 가설, 과거, 현재, 미래의 동시성에 대한 이야기는 '양자역학'과도 관련이 있다. 양자역학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실제 세상이 아닌 시뮬레이션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에 대해 논하곤 한다. 개발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세상은 어쩌면 흘러가는 세상사와 개개인에 대한 사연들이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있고 짜여진 구성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부분에서 전남편은 양자역학을 믿고싶었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양자역학은 시간의 상대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과 대립하였다. 그러나, 이중슬릿 관찰자 실험을 통해 입증된 양자역학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끊이지 않는 과학의 영역 한 부분이다. 나는 사실 이 양자역학 이야기를 꽤나 좋아한다. 그래서 전남편의 생각에 동의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전남편의 생각은 앞서 설명했듯 인간의 진정성과 사랑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벵하민 라바루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입자는 여러 방식으로 공간을 통과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고를 수 있다. 어떻게? 순전히 우연으로, 하이젠베르크가 보기에 어떤 아원자 현상이든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기술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전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이 있었지만 이젠 확률의 스펙트럼이 존재할 뿐이었다. 만물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물리학이 발견한 것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듯 세계의 끈을 당기는 합리적 신이 지배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가 아니라 우연을 가지고 노는 천수여신의 변덕에서 탄생한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中..-

 

 

내가 양자역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우연성은 자연의 불확실성을 드러내며 모든 사건이 반드시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관점에서 '사랑'이라는 감정도 어떤 일정한 법칙에 따라 예측되기보다는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로 인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은 때로는 우연히 찾아오는 만남에서 시작되고, 복잡한 감정의 얽힘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양자역학이 강조하는 우연성은 사랑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과관계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작품 속 전남편과 다르게 양자역학을 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날 아침 의사가 내게 귀리의 죽음을 알렸을 때 느낀 감정이 슬픔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나는 안도했다. 나의 일부는 안도했다. 귀리의 고통이 이제 사라졌다는 사실에, 고통을 받는 그애의 모습을 보고 겪어야 했을 나의 괴로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그 이기적인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가 버스에서 내리고나서도 나는 계속 말한다. 알아, 알아. 결국 다 떠난다는 걸...... 깨어나고 싶어. 나는 벨을 누르지만 버스는 정차하지 않는다. 소리질러 기사를 부르고, 주먹으로 아무리 출입문을 두드려도 버스는 서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등뒤에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것이 남편이 나를 떠남면서 문을 닫는 소리라는 것을 안다. 너만은..... 너만은 나를 떠나지 않을 줄 알았어. 나는 바닥에 앉아서 몸을 떨며 운다.
  지연아.
  그때 내게 앞니 두 개가 빠진  여덟 살의 언니가 다가와서 등을 두드린다.
  지연아, 지연아.
  언니가 나를 부를수록 세상이 환해진다.
  태양이 커지고 있었나봐.
  나는 좀전까지 울던 일을 잊고 언니에게 말한다.
  너무 밝아서 눈이 부셔,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 있어?
  내말에 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 처럼 환한 빛 속에서 소리 내며 웃는다.
  바보야.

  언니가 말한다.
  바보야, 난 널 떠난 적 없어.

 

 

나는 병실 창문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면서 그날 내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했다. 언니가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나는 그것이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 이야기를 평생 누굿에게도 털어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알았ㅅ다. 내가 오래도록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충분했으므로, 더이상 바랄 수 없었으므로.

 

 

엄마 미선과 지연의 갈등이 심화돼는 과정에는 숨겨진 언니의 상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선과 지연은 서로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언니의 기억을 나누지 않으면서도 그 상실의 아픔과 그리움의 상처를 스스로 보듬으며 살아왔다. 미선의 침묵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지연의 향한 깊은 사랑과 배려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단지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른 것이기에 지연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 이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언니의 존재를 각자의 방식으로 간직하며, 그리움과 상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선은 지연의 상처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녀는 언니를 잃은 슬픔이 지연에게 남긴 상처를 직시하며 그 아픔이 지연의 마음속에서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음을 알고 있다. 미선은 그 상처를 덜어주고자 애쓰며,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지연의 마음속에서는 언니의 기억이 마치 아주 멀리멀리 보이는 아련한 별빛처럼 희미하게 비추곤 했지만 더는 그 희미한 별빛이... 되돌아 올 수 없는 별빛이 지연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본인 또한 상처받기 싫었기에... 미선은 조용히 언니의 이름을 지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연은 늘 언니가 떠났다고 믿어왔고, 엄마의 태도에 자신 스스로를 속이고 언니를 잊어왔을 것이다. 그러다 깨달았다. 언니는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고... 이혼 한 뒤 나 홀로라고 생각했을 때에도 항상 언니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곁에 머무르며 지연을 조용히 웃으며 응원해주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모든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는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지연)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적 배경이 섞여있다. 얼핏 보기에 각기 다른 인생의 궤적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은영 작가는 그 중심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를 짊어지며 때로는 홀로 울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낸다. 고통의 연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그 악순환의 고리는 비단 아픔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따스함은, 어제 마지막 휴가를 보내며 산책했던 내 머리 위 하늘에 떠있던 은은한 슈퍼문 달빛과도 같았다. 이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갔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어떤 사회상을 만들어갈 것이고, 그 사회상이 개개인에게 어떤 보답으로 올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즉, 최은영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공감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밝은 밤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은 어둠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 불씨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그동안의 아픔을 위로해주었다.

밝은 밤을 덮으며 나는 어느새 눈시울이.................................................다. 그것은 단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지연에 대한 공감, 그리고 나의 상황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각 인물들에 대해 고민했고, 심지어 나는 봄이한테까지도 마음을 들어보았다. 이 책은 나에게 말한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찾아오듯 우리도, 나도 언젠가 빛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빛을 향해, 함께 걸어가자고.

책을 다읽고 고민이 많았다. 독후감을 쓰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동생에게 책을 건네기전 한번 더 읽었다. 내가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쓴다면 왠지 아주 긴 글이 될 것 같았고 실제로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쓰게 되었다. 우연히 그리고 공교롭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여러가지로 피곤하다, 얼른 이제 자자 :)

 

 

★ ★ ★ ★ ★

 

 

 

끝.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선 프롬  (4) 2024.10.09
지구에서 한아뿐  (6) 2024.09.04
덧니가 보고 싶어  (0) 2024.08.11
보건교사 안은영 (팬픽션)  (0) 2024.08.02
비행운  (0) 2024.07.27

 

나는 개발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퇴근 후에 사이드 프로젝트도 자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직접 방향을 정하고, 요구사항도 결정하며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서 좋다. 이 과정에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요구사항이 불분명하거나 방향성을 잡기 힘든 업무를 맡게 되면, 그 재미는 급격히 줄어들고, 마치 주어진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기획자나 디자이너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요구사항을 더 명확히 하고, 공학적으로 접근하여 더 나은 답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사용자들의 니즈를 해결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용기는 이런 점에서 나와 닮아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따금씩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는 우리들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용기는 매일 보안업체에서 출동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열정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원래 럭비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용기가 지금 하는 일과 럭비 선수의 직업이 유사한 점이라면, 둘 다 피지컬을 사용한다는 점뿐이다. 그가 보안업체에서 출동할 때면 대부분의 경우가 취객의 실수이거나 쥐나 고양이 같은 동물로 인한 헤프닝에 불과했다. 이처럼 유의미한 출동은 거의 없었지만, 용기는 현실적인 성격 덕분에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어진 먹먹한 현실에 우울해하고 있다. 마냥 해맑기만하고 긍정적인 7살 어린 여자친구의 처지도 그다지 달라보이지않는데... 어찌 그렇게 명랑하기만 한 것인지... 그뿐만일까? 용기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못이룬 럭비 선수에 대한 아픈 미련이 영 떠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조차 럭비 경기를 뛰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괜찮다고, 용기는 지친 자신을 다독였다. 여기가 내 자리야. 꿈꿨던 직업은 아니지만 변두리의 밤을 지키는 출동 요원이 되었다. 팀 사람들도 다 맘에 들고, 격의 없는 동네 누나와 가끔 놀고, 귀엽고 꼬인 데 없는 여자친구와 데굴거리고. 더 바랄게 없다.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장소도 없다.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용기가 새로 생긴 여자친구가 있었음에도 그의 X, 재화는 여전히 그에 대한 미련이 엄청 났었다 보다. 그녀는 세컨드 직업으로 작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소설속에서는 매번 용기가 등장하고, 그는 매번 죽었다. 누군가는 용기에 대한 악감정이 얼마나 심하면 이렇겠냐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만, 나는 이것이 그를 잊지 못한 미련이라고 생각한다.

 

 

원전폐기물 보관함처럼, 위태롭지만 조용하게. 엉망인 내부를 숨기면서 사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뭔가 중요한 부분이 고장나버렸다면 더욱 들켜서는 안 된다. 안쪽에 나쁜 냄새가 나는 죽은 것들이 가득하다는 걸 상대가 알아버리면 바로 도망치고 말 테다. 용기가 그랬던 것처럼.
  돌아누울 때마다 머릿속에서 부품들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직은 버틸 수 있다. 괜찮다.

 

 

승주와 헤어져 밖으로 나서니, 초가을 거리에는 매미들이 죽어 떨어져 있었다. 여름 내내 강렬했던 구애의 끝이 가루로 부서지는 몸이라니 슬펐다. 그래서, 너희는 바라던 사랑을 얻고 죽었니? 재화는 죽은 매미들을 깨워 묻고 싶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독자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잊고 있던 기억을 살며시 불러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독특한 전개와 때로는 황당하게 느껴질 법한 상상 속에서도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을 적시며 독자를 이야기의 품으로 부드럽게 이끌어간다. 마치 오래된 꿈 속을 헤매는 듯, 그녀의 글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내 안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나면 30분 정도가 남는다. 누군가는 동료들과 커피한잔을 하러가거나, 동기와 수다를 떨러가거나, 운동을 하러가거나, 엎드려 잠을 자곤한다. 나는 이 책을 조금 이라도 더 읽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서 남은 점심시간을 수시로 모니터의 오른쪽 아래 시계를 봐가며 책의 내용에 초집중을 했다. 덧니가 보고 싶어는 정세랑 작가의 책 중 유독 마음에 드는, 내 마음을 아프게도하고, 웃게도 만드는 글들이 많이 있었다. 나의 삶을 관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래들을 듣고 나서, 여왕이 싱어송라이터에게 말했다.
"얼음에 손도 대지 말아요. 얼음을 어쩌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싱어송라이터는 동의의 뜻을 밝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리 나지 않는 기타를 들고 앉아 있다 갔을 뿐이었다.
이례적인 관계의 두 사람을 얼음을 사이에 두고 그대로 있는게 그저 좋았다. 영원히 그런 날들이 지속될 줄 알았다.
  두 사람이 동굴 안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은, 지구온난화였다. 지구 온난화가 아주 심해졌고, 어어, 하는 사이에 어느 날 얼음 관이 모두 녹았다. 싱어송라이터는 무척이나 당황해서는 뒤로 멀찍이 물러나 기다렸다. 여왕은 미지근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짜고는, 드디어 낯선 악기의 소리를 제대로 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까.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 숀은 에밀리를 만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 했다고 스테파니에게 말한다. (사실 에밀리는 미친 여자였지만 말이다. 미친 여자인걸 낌새를 알았지만서도 당시 그는 그녀에게 푹 빠져있었다.) 나는 재화가 이 숀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용기에게 푹 빠져있는 그녀의 내면을 보면서.

 

 

선이의 특제 카레는 아니었지만, 짜장도 꽤 맛있었다. 때때로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는데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매력적인 후자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최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정세랑 작가는 어쩌면 인생 2회차인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러한 경험을, 누구나가 경험 할 수 있는, 그러나 무의식적으로만 느낄 뿐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쳐버릴 삶의 한 현상을 글로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다니... 아무튼 이 부분에서 나는 재화의 용기를 향한 여전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생각엔 어쩌면 용기도 7살 연하 여자친구를 두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이따금 잘 만든 가정집 카레가 너무 먹고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며 그러한 생각이 더 강렬해졌고, 이 글을 쓰며 다시 되새김질 되어 정말 너무 카레가 먹고싶어졌다.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위 대목의 내용에 대해 나는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다.

 

 

옛날 사람들처럼 편심, 촌심, 단심 같은 단어들을 쓸 때마다 지잉, 하고 뭔가 명치께에서 진동하고 만다. 수천 년 동안 쓰여온, 어쩌면 이미 바래버린 말들일지도 모르는데, 마음을 '조각' 혹은 '마디'로 표현하고 나면 어쩐지 초콜릿 바를 꺾어주듯이 마음도 뚝 꺾어줄 수 있을 듯해서. 그렇게 일생일대의 마음을 건네면서도 무심한 듯 건넬 수 있을 듯해서.
  언젠가 용기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날이 있었다. 용기는 그 말을 초콜릿 바를 받은 가벼이 받았었다. 재화의 마음, 꺾인 부분에서는 잔 가루들이 날렸는데.
  너는 모르지.

 

 

역시 재화는 용기를 애타게 기다렸다보다, 떠나간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그때의 그이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너는 모르지...' 우리는 이런 말을 마음속으로만 하곤한다. 상대방에게 들리지도 않을 이야기를.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정세랑 작가의 표현들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난다. 결국 이러한 글귀들이 곧 정세랑 작가의 실제 경험과 그것에 따른 영감이 나온게 아닐 까하는.. 예를 들면, 지하철 플랫폼에서 어떤 여자가 강아지를 와앙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먹어 깜짝놀랐으나 알고 보았더니 그것이 왕만두였다는 내용이 그러하다. 분명 정세랑 작가는 그 글을 쓰기 며칠 전 멀리서 왕만두를 보고 말티즈로 착각했으리라...(아님말고요ㅎ)

 

 

부모님 입장도 이해는 갔다.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딸을 열심히 키우면 백조가 될줄 알았는데, 시조개나 가루다처럼 알 수 없는 괴생물로 자라버렸으니. 그러나 부모의 승인을 받는 트랙에서는 벗어난지 오래였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오늘도 네 좌표를 알지 못해. 우리의 좌표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지 못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재화는 정말로 우주선에 있을 법한 작고 딱딱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발끝이 시렸다. 잠결에, 엔진처럼 무언가 허밍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너한테 설명할 말이 없어. 하지만 이건 내가 한 일이 아니고 재화가 한 일도 아닐 거야."
  용기는 자기가 얼마나 재수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며 말했다.
  "닥쳐."
  충분히 재수없는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때 모둠 비빔밥을 해먹으면 꼭 돈가스를 해오는 애들이 있었어. 아마 엄마한테 알림장을 보여주지 않았던 거겠지. 그런데 비빕밥에 들어간 그 엉뚱한 돈가스가 의외로 또 맛있었다? 다 부서지고 눅눅해지고 그랬는데도 맛이 있었어. 그 돈가스처럼 오빠가 좋았어."

 

 

이 소설속에서 제일 딱한 존재는 용기의 7살 어린 여자친구다..... 용기는 그녀에게 어떠한 적절한 해명도 해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용기는 아마 제일 재수없는 X에 미쳐버린 나사빠진 전남친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의 친구들도 함께 술자리에서 쌍욕을 해주며 잊으라고 할 것이다. 아마 용기는 이런 부분들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다행이야... 라고 생각 할 것 같다. 똥차가고 벤츠가 온다 했던가, 분명 그녀라면 이제 나이 차이가 덜나는 근사한 남자친구가 생겼을 것이다.

 

 

그랬던 용기가 열여섯 시간씩 자게 되었다. 자고 있을 때에만 크고 작은 상처들이 아무는 걸 느꼈다. 안쪽이, 오래전에 잃었던 균형 잡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동물들에게 미안해졌다. 코알라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코알라들도 여자친구에게 세게 차였는지도. 그저 아주 멋진 꿈을 꾸는 종일 수도 있지만.......
....
미안해, 코알라들.
미안해, 여자친구.
미안해, 재화.

 

 

피곤할때면 잠을 정말 열시간, 열 두시간 씩 자곤한다. 정말 피로에 지쳐 그런 걸까? 아니면 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꿈속에서 나만의 안식처를 찾고 싶은 걸까... 아니면 둘다인걸까? 어찌돼었든, 코알라가 잠을 많이 자는 이유는 그들의 식단과 에너지 소비 방식과 관련이 있다. 코알라는 주로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사는데, 이 잎들은 영양가가 낮고 소화하기 어렵다. 또 유칼립투스 잎에는 독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이를 해독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코알라는 이와 같은 저영양 식단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약 18~22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아니야, 언닌 정답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정답으로 지켜나가는 사람이니까. 난 누군가의 유사답 정도는 되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한 번도 정답은 못 되어봤네."
  선이는 빨대 껍질을 잘게 찢으며 재화의 말을 곰곰 따져보는 듯했다.
  "그런거 될 필요 없는 것 같아. 누구의 무엇도."

 

 

작품 속 선이는 현명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누나로서 좋은 메시지를 계속 전한다. 카레를 짜장으로 바꾸어 버리는 엉뚱하고 황당한 헤프닝을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화와 용기를 엮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그들의 잠재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행동으로 바꾸어주는 촉매의 역할을 단단히 해준다. 작품속의 그 누구보다도 단단한 마음과, 그 마음속에는 여유마저 갖추고 있는듯 보인다. 결국, 선이의 어시스트로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스릴러 내용 속에서 극적으로 말이다. 나는 스릴러를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아주 자극적으로 표현한 정세랑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를 6개나 뽑아버린 상황을 가정하는데, 꽤나 끔찍하게 묘사되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영화라도 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꼈다.

 

 

이러한 극적인 상태에서 결국 두 사람은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을 읽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용기는 재화의 소설속에서만 컨테이너(container)였었다. 감금된 채 이가 뽑힌채로 죽을 마당에 생겼던 그녀를 구출하고자 했던 현실에서는 커리지(Courage)였던 것이다. 재화는 자신을 회피했고 떠나간 용기를 컨테이너라고 생각했었다. 그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구해러와주지 않는 용기를 자신의 이야기속에서 죽였었고 겁쟁이 취급을 했다. 어쩌면 재화는 앞으로 자신의 소설속에서 더이상 죽지 않는 용기, 커리지한 용기를 그려나갈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좋다.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글들이 너무나 많고, 일일히 그것을 담아두고자 카메라앱을 열어서 캡쳐를 해놓는다. 언제든 그 글들을 읽어 볼 수 있도록. 이번 주말은 푹 쉬었다. 하고싶었던 개발 공부도하고, 아파서 저번에 쉬었던 수영도 열심히 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수영장에 많아졌고 수영장의 기본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내가 가고자했던 1km는 넘게 헤엄을 쳤다. 그리고 삼겹살을 주문해서 맥주와 함께, 영화 한편과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일요일은 내리 잠만 잤다. 코알라처럼.

나는 이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까.

(그리고 사실 표지 속 그려진 용기가 나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책이 별나다는 생각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또 하필 장면이... 에로에로젤리가 떠오른다.)

 

 

끝.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에서 한아뿐  (6) 2024.09.04
밝은 밤  (0) 2024.08.22
보건교사 안은영 (팬픽션)  (0) 2024.08.02
비행운  (0) 2024.07.27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이번에는 독후감이 아니라 팬픽션을 써보았습니다. 3편이 너무 읽고싶은데 작가님께서 안써주셔서 제가 직접 썼어요.

 

보건교사 안은영 3

Episode1. 옴잡이 파수꾼

 

  신음하는 혜민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나간 것은 이른바 '용 사건'이 벌어지고난 몇 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은영과 인표는 퇴근 후, 학교에서 약 30km 떨어진 어느 아름다운 강가 카페에서 조용히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물가에 비친 저녁 노을이 온화한 빛을 드리우고, 잔잔한 강물 위로 반사된 햇살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이 순간의 평화로운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도 잠시 혜민의 전화를 받고 은영은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달콤한 데이트의 여운은 곧바로 무너졌고, 그녀는 한순간에 날카로운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그녀와 인표는 빠르게 자리를 떠야만 했다.
"선생님... 이렇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배가 너무 아픕니다. 위가 뒤틀리는 기분입니다.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대학생이 된 혜민의 말투는 여전했다. 혜민을 인표의 차 뒷좌석에 최대한 편안하게 눕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꽤나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오동호 교수는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월이 남긴 흔적은 그의 흰머리에서 뚜렷이 드러났고,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의 무게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보였다. 흰머리 하나하나가 지나간 날들, 그리고 쌓인 경험과 고뇌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동호 교수의 얼굴에 스쳐간 깊은 한숨과 조용한 결연함은 그의 진지한 책임감을 말해주었다.
교수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청진기를 이리저리 대며 혜민의 등과 배를 탐색했다. 그의 표정은 집중과 숙고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눈빛은 감춰진 고통의 징후를 읽으려는 듯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복부를 눌러보며 부드러운 손길로 혜민의 몸을 살펴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수술이 완벽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속의 갈망과, 현재의 위급한 상황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기침이나 목아픈 증상은 없나?"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네... 위염이나 위궤양일 수 있어. 일단 진통제랑 해열제를 처방해줄게 주사 맞고 3일 뒤에 보자고."
오동호 교수가 진찰을 하는 동안 은영은 장난감 칼로 열심히 무지갯빛 장난캄 칼을 교수의 머리 위, 등, 팔에 휘두르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인표는 마치 행위예술을 보는 관객이 된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휘두르며 열심히 제거하는 모습을 보고, 이 귀여운 행위예술이 일상 속의 작은 마법처럼 느껴졌다. 인표의 시선은 은영의 사랑스러운 동작 하나하나를 소중히 담아내는 듯, 그녀의 모든 행동이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제가 모처럼와서 이렇게 치료해드리는데, 그게 다에요? 제대로 보신 것 맞죠?"
"문제가 될만한 소견은 없네만 경과를 더 지켜보는게 좋겠네."

  결국 별소득없이 혜민의 집으로 돌아왔다. 은영은 혜민을 눕히고 약을 먹이고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인표는 어질러진 대학생 혜민의 자취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 안은 시간이 쌓인 흔적들로 가득했다. 책상 위에는 쌓인 강의 노트와 교과서, 빈 컵과 간식 봉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벽에는 친구들의 사진과 다채로운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지만, 그 사이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지저분한 옷과 가방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표는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정리하며, 방의 안쪽에 스며든 대학생의 일상과  남겨온 작은 흔적들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침대 위에 놓인 비스듬한 책들은 아마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그대로 둔 채로 잠들었을 것이다. 벽에 붙은 사진들은 혜민의 웃음과 추억을 담고 있었고, 각종 메모와 스티커들은 그녀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있는 듯했다. 인표가 책상 위의 혼란스러운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그 안에서 발견되는 조각조각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갔다. 잃어버린 펜, 책 사이에 끼어 있던 마지막 시험 결과, 그리고 자주 꺼내어 본 참고서들.. 이 모든 것들이 그간 혜민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고뇌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참 누구보다도 살고싶어했고 진지한 아이였지. 정리하면서 방 안이 점점 깔끔해지자, 인표는 방의 공간이 조금씩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돈된 공간에서, 자취방은 마치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워졌다. 


  혜민이 고통을 힘겹게 참으며 말했다.
"저 죽는겁니까? 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경험하고 싶습니다. 저도 남들처럼 하고싶은거 다 하며 살고 싶다고요."
그간 얼마나 영겁의 시간을 보내왔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20살까지 살다 죽다를 반복해왔으며, 이번이 어엿한 첫 어른으로서의 생활이다. 은영은 혜민의 말을 듣곤 그녀의 영혼 깊숙이 깃든 불꽃 같은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녀가 삶의 모든 순간을 불사르고자 하는 듯한, 끝없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수하고도 강렬한 열망이었다. 은영은 그 순수함이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나랑 한문샘 죽는거 보고 죽어야해. 와서 육개장 먹고 가~"
깔깔대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농담을 했지만 마음속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위를 절제한 것이 정말 원인인걸까...?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나아지지 않으면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볼 요령이었다.
은영과 인표가 돌아간 것은 설마 옴과 같은 존재가 혜민을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취방을 샅샅이 뒤져 본 후였다. 그녀의 방에선 아무런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첫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혜민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캠퍼스의 신선한 공기와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자신을 실감했다.
혜민은 복잡한 강의 시간표를 손에 들고, 낯선 건물 사이를 헤매다가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흥분과 설렘이 가슴 속에서 마구 솟구쳐 올랐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강의실은 이미 많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수님의 목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혜민은 열심히 아이패드에 필기를 하며, 대학 생활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고자 했다. 아이패드는 입학선물로 은영 커플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은영은 예쁘게 리본으로 포장된 아이패드 박스를 건네며 인생을 자신보다 더 오래보낸, 그러나 경험은 훨씬 짧았던 혜민에게 이 말을 덧붙였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을 거야. 괴로운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괜찮아. 미래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거든. 무리해서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강의가 끝난 후, 혜민은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교정을 거닐었다. 그들은 서로의 꿈과 계획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은영은 창문을 열고 캠퍼스를 내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았다. 혜민은 이 순간,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수 세기만에  처음으로 겪어보는 성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이제는 앞으로 70년은 더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혜민에게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모양 이꼴이라니 왜 나는 항상 이런걸까...수술한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왠지 죽을 병에 걸렸다는 감각은 무거운 비밀이 되어 그녀를 짓눌렀다.

 


  이틀 후 퇴근한 은영은 곧장 혜민의 간호를 위해 그녀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혜민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저.. 이상합니다. 왠지 배가 더 아픈 것 같은 기분이.."
그 순간 깜짝놀랄 일이 벌어졌다. 어디선가 나타난 여자, 그 여자는 언제나타났냐는 듯 혜민의 배에 손을 조용히 올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은영은 펄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누구야?! 너?"
"선생님,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허공에다 소리를 질러대는 은영을 보며 혜민은 은영도 미쳐버린게 아닐까 생각들었다. 은영은 찬찬히 여자를 뜯어보았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보통 어떤 기운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마치 이 젤리는 상당히 단단해보이고 악의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혜민의 배에 손을 올리고 있는 와중에는 혜민이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듯 했다. 혜민은 여자가 보이지 않는걸까? 옴잡이에서 일반인이 되었으니, 당연하겠구나.
"당신 누구냐고 말을 해보라니까?"
비비탄총을 꺼내 그녀를 향해 겨누고 거칠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가 손은 여전히 혜민의 배에 대고 있는 채로 천천히 은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ㅡ 회수 중 입니다. 저를 계속 방해하신다면 당신 또한 처분할 예정입니다.
대체 뭘 회수한다는 말인가. 선인지 악인지 식별 할 수 없는 이 여자에 대해 은영은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실례지만 일단 배에 손을 좀 내려놓고 말씀해주시겠어요? 우리 애가 아파하잖아요."
그녀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ㅡ 그래서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해야합니다. 회수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정말이지 감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그녀의 대답에 더 늦기전에 어떻게든 그녀의 손을 혜민에 배에서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한 은영은 말 없이 그녀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그녀의 손목에 맞았고, 효과는 강력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요하게 곧장 방바닥에 나뒹굴다 천천히 일어났다.
"한번만 더 그랬다간, 곧장 제거해버리겠어 당신이 누군지 말해."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 했고 잠시 할 말을 골똘히 정리하듯 수십 초 간 정적을 이어가다 입을 열었다.
ㅡ 저는 옴잡이 였습니다. 하지만 옴을 씹어먹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이런 저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탓으로 이렇게 제 과업이 남아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살아생전 '은아'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러한 옴잡이로서의 영겁의 탄생과 죽음의 반복에 지쳐버린 나머지 어느순간 옴잡이 일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ㅡ 최근 몇번의 환생 동안은 옴도 잡지 않고 마음대로 살다가 20살에 떠났습니다. 제가 그걸 왜 먹어야 합니까? 옴을 잡는 일은 지겹고 20살에 죽어야한다는 것도 재미 없는 일입니다. 그냥 주어진대로 사람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몇번의 환생동안 일을 하지 않으니 전생이 마지막 기회였었나 봅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회수가 되지 않고 이렇게 영만 남은 채로 옴잡이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옴잡이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특히 이 옴잡이는 이상합니다. 저에게 분명 옴잡이로 인식은 되었으나 이 옴잡이는 고장났어요. 능력을 상실했기에 회수를 해야합니다. 그것이 제가 할 일이죠.
은아는 회수가 완료되면 회수 대상이 결과적으로 정확히 어떻게 돼는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보이는 현상으로만 설명하자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게 된다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아는 혜민과 비슷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은영은 사람이 기계나 사물도 아니고 고장이니 회수니 하는 말이 영 탐탁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어떻게 살린 혜민인데 이제와서 데려가겠다니 은아를 늦기전에 어서 장난감 칼로 제거해야하나 고민하던 와중 다시 은아가 입을 열었다.
ㅡ 저를 방해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사라져도 다시 나타나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이제 떠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옴에 대한 일은 재미가 없고 옴잡이로서의 삶도 싫습니다. 더군다나 옴잡이들의 팀장 역할이라니 최악입니다.
은아는 일종의 시스템이었다. NPC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은아는 단지 못다한 과업을 해야하는 존재였고, 몇년 전 수술을 통해 옴잡이의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된 혜민을 정리하러 왔을 뿐인 것이다. 자신의 일을 못다한 귀신 옴잡이 팀장으로서 과업이 끝날때까지 살아있는 옴잡이들이 올바르게 일을 할 수있도록, 그들이 고장나면 고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과업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1년일수도 있고 1000년일 수도 있다. 장난감 칼과 비비탄총도 쓸모가 없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때 문득 도움을 줄만한 생각나는 남자가 있었다. 은영은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정적을 깨는 가운데,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는 번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녀석에게 또 연락을 해야 한다니..." 그녀의 마음은 깊은 피로와 불안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그와 엮일 때마다 감도는 불쾌감과 어색함이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은아의 첫 생에서는 모든 것이 신비로웠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러나 20살이 되던 해, 그녀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눈을 떠보니 다시 태어나 있었고, 동일한 운명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자신의 사명이 사람들의 나쁜 옴을 제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도, 그녀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다. 매 생마다 은아는 20살의 벽을 넘지 못했고, 그 나이에 도달하면 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나쁜 옴을 씹어먹으며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적인 사명은 그녀에게 점점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세기가 지나고 흐를수록 은아는 반복되는 삶에 질려버렸다. 매번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결말은 언제나 같았고, 그녀는 더 이상 정해진 운명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나쁜 옴을 제거하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면,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은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쁜 옴을 씹어먹지 않고,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녀의 선택은 큰 대가를 불러왔다. 은아는 더 이상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젤리가 되어버렸다. 차가운 영혼이 된 은아는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끝없는 외로움 속에서 떠돌게 되었다. 그녀는 영혼의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수많은 생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눴던 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야 했던 슬픔. 은아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자유를 원했다. 끝없는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끝없는 고독뿐이었다. 젤리가 되어버리기 직전 전생에서, 여전히 자신의 대의를 지키해 사명을 저버리고 있는 어느 날 은아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 은아는 그제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된 자신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바라보는 것을 각별히 좋아했다. 별들은 은아가 언제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었다. 한참을 밤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세상은 허무해. 처음부터 슬픔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일도 가능하지. 그러니 괴로움에 걱정에 구애되지 마. 보이고 들리는 것에 매달리지 마.'
더 이상 반복되는 삶 속에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녀는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며칠 후면 다시 죽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자.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고 하늘은 그녀에게 작정하고, 말을 듣지 않는, 고장난 그녀에게 벌을 주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매켄지는 이번에도 연락을 무시하지 않고 학교로 찾아왔다. 지난번 학교에서 벌인 '용 사건'을 생각하면서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부으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했지만 지금은 싫은 소리 해보았자 도움이 될 것이 하나 없다는 걸 알기에 일단 참아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고스트 버그 이터(Ghost bug eater)라니 정말 흥미롭네요....... 하하 그러게 전문가에게 맡기셨어야지 왜 돌팔이에게 찾아가서 수술을 받아요? 싼게 비지떡..."
매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 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비비탄총으로 매켄지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맞을 말을 했다는 걸 스스로 알기라도 하는건지 걸까 짧은 비명을 지르며 매켄지는 머리를 부여잡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건은 얼마에 해줄거야?"
"저번과 똑같이 2억. 엑스트라는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해볼게요."
짧은 대답만 하고는 매켄지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우스꽝스럽게 차에 황급히도 올라타더니 이전과 똑같이 대형 세단에 어울리지 않는 요란한 소리와 동작을 하며 도망치듯 멀어져 갔다. 이번 일만 끝나면 다신 연락을 안해야겠다. 생각하며 금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역시 7시리즈는 다르네..."
인표가 매켄지가 사라진 도로를 멍하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은영은 인표에게 어머니의 그림을 팔자고 조르는 그런 상상을 잠깐 해보며 그런 애인이 되기에는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학교 지하는 아직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로 은영, 인표, 매켄지 그리고 은아가 모였다. 성질 나쁜 젤리들을 대충 치워낸 인영은 바디샴푸, 바디오일 따위의 제품을 파는 브랜드의 종이백을 매켄지에게 내밀었다. 내용물은 신문지로 덮여있었다. 매켄지는 능청스럽게 바닥에 주저앉아 종이백의 내용물을 쏟아내곤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뭐야 450만원 밖에 없잖아요?"
"미안, 조금씩 언젠가는 갚을게? 2억을 어떻게 한번에 준비하냐 일단 이거라도 받고 시작하던가, 아니면 말던가."
매켄지는 곧장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하더니 곧 일어나 자신이 준비해온 서류가방을 열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다이어리를 꺼내 읽어보곤 마치 매우 소중한 물건인양 조심스레 서류가방에 넣고 어떤 씨앗이 들어있는 통을 꺼내들어 은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뭐하는거야 그 역겨운 씨앗 안집어넣어?"
"은영씨, 그 씨앗 아니에요."
매켄지는 기분나쁘게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은영은 이젠 학교 떠났다고 자신을 선생님 대우 안하냐며, 왜 자신의 이름에 씨를 붙여 말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례한 표현인지에 대해 열렬히 화를 냈다. 인표는 그런 와중에도 상당히 재미있다는 듯 은영을 쳐다보고 혹시나 모를 기운의 나눔을 위해 손을 쳐다봤다. 화장실에서 얼마나 깨끗하게 씻었는지 손에서는 은은한 물비누의 향기가 났다.
"이건 마리골드 씨앗이에요."
매켄지의 목소리가 지하에 부드럽게 퍼졌다.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씨앗은 은아씨를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예요.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게 해줄 거예요."
매켄지는 손끝으로 씨앗을 공중에 살짝 흔들며, 그것의 신비로운 힘을 강조했다.
은아는 묘하게 희망적인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수줍음마저 엿보였다. 싸늘한 지하 바닥에 팔을 벌리고 누운 그녀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져 그녀를 감싸 안으며 자유의 어떤 장소를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매켄지는 조용히 은아에게 태어난 생년월일과 시간을 물었고, 은아는 그 질문에 홀린 듯이 대답했다. 매켄지는 자신의 명리학 책을 펼쳐들고, 그 속에서 '옛말에 음양오행이라 하여...'라는 구절로 은아의 일생을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며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가던 그의 목소리가 은아에겐 따스한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매켄지는 신중히 마리골드 씨앗을 은아의 이곳저곳에 뿌리며, 그 씨앗들이 그녀의 꿈과 희망을 싹트게 할 것이라 믿었다. 마지막으로, 매켄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이 담긴 물병을 꺼내더니, 은아에게 조심스럽게 뿌리며 마무리했다. 물방울이 은아의 몸에 떨어질 때마다, 마치 오래된 전설의 조용한 마법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매켄지는 그녀의 마지막을 격려해주었다.
"반복되온 길, 이제는 모든 아픔과 슬픔, 지나온 사랑의 기억을 잊고 별빛 가득한 영원의 품에서 평온히 쉬어요."
ㅡ 고마워요.
은아는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은영이 보아온 은아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어린 아이처럼 으앙하며 펑펑 울었다. 왠지 은아의 형체가 서서히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겨웠던 일들에 대한 후련함일까, 이곳을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진짜 죽음'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에 우는 것도 같았다. 아마 은아는 '진짜 죽음'이 정말로 무서웠던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를 잃고 길에서 우는 아이처럼 매우 서럽게 울었다. 눈물은 끝없이 쏟아져 내렸고, 은아의 몸은 점점 더 흐릿해져 갔다. 그녀는 자신이 이제 완전히 사라질 것임을 느꼈다. 모든 생에서 느꼈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꿈들이 그녀의 눈물 속에 녹아내렸다. 은아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채로 울부짖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공허한 지하에 메아리쳤고, 세상은 그녀의 슬픔에 잠시 멈춘 듯했다. 그녀의 영혼은 이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동안 견뎌왔던 모든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은아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한없이 작고 무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왜 태어나야 했는지, 왜 반복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왜 이제서야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다는 현실적인 사실만이 그녀를 울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은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한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안좋은 영향의 꿈틀거리며 흩어져 있는 지하의 젤리들이 보인다. 천천히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사람들... 자신의 모양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어떤 형체로 바뀌고 있는지, 설마 괴상하게 변신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눈빛으로 주시하며 살피고 있는 은영과 매켄지, 은아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냥 멍하니 딴 곳을 쳐다보고 있는 인표. 이들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은아는 흐릿해져가는 시선 속에서,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마침내 은아는 바닥에 누워 우는채로, 고요한 밤 속으로 사라졌다.
은아의 마지막 눈물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의 슬픔과 고통은 이제 끝이 났지만, 그 울음소리는 그녀가 위로받던 밤하늘에 영원히 남아 그녀가 겪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은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영원히 자유로웠다.


  은영도 덩달아 울음이 났다. 그동안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자신으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그녀만의 슬픔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짚으며 주저앉아 버렸다. 눈물이 떨어진 그 자리에,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문득 김강선이 떠올랐다. 김강선도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펑펑 울고싶었을까?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까? 은영은 김강선과의 추억에 잠겨 버렸다. 그가 그림자 없는 채로 나타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집에서의 따뜻한 기억들. 고요한 오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거나, 작은 키친에서 함께 요리를 하던 순간들. 김강선의 미소와 그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그의 존재가 은영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그가 정말 행복했을까? 그가 자신의 존재가 은영에게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느꼈을까? 은영은 그와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을 가슴 깊이 품고, 그가 은영에게 주었던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뒤늦게나마... 정말 뒤늦게나마 확인한 서로의 마음이었다. 이런 추억들은 살아있을 때나 만들어주지하며 괜히 투덜대고 싶었다. 은영의 눈물은 김강선과의 추억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김강선은 은영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따스한 노을처럼 남아 있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은 하루의 끝을 맞이하면서도 남아 있는 빛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빛은 한편으로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동반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따스한 기억과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깨달으며, 은영은 잠시 그리움에 잠겨 있다. 그리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눈물 속에서, 김강선과의 소중한 순간들은 은영의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부디 잘지내기를... 그와의 추억이 그녀에게 남아 있으며, 그 기억이 그녀의 가슴 속 어딘가에는 영원히 빛나리라는 것을 믿으며, 서서히 눈물을 거두었다.
그때 갑자기 인표의 '끄아악!' 하는 비명이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은영은 심장이 뛰는 듯한 충격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경악 그 자체였다. 인표가 바닥에 쓰러져 있으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의 비명 소리가 여전히 축축한 공기 중에 맴돌고, 그로 인한 긴장감이 지하에 가득 차 있었다. 은영은 급하게 달려가 인표의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들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인표의 호흡은 불규칙하고 헐떡거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모습. 악몽에서 방금 막 튀어나온 듯한 비극적인 신(Scene)은 생생하게 은영의 시선에 박혔다.
"남은 1억 9천 550만원은 이것으로 대신하겠어."
매켄지의 말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매켄지의 신체를 큰 보호막이 둘러싸고있다. '세상에, 미친놈아니야?!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방어막을 돌려달라고 싹싹 빌어야하나? 당장 사채라도 써서 갚겠다고 제안해야하나' 별의 별 생각이 그 몇초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며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매켄지는 전속력으로 달아났고 인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몸은 지하실의 음산한 기운에 의해 더더욱 괴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괴로운 몸부림 사이로, 과거에 보았던 그 씨앗들이 바닥을 덮으며 인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씨앗들은 변태적인 생명체처럼 기어오르며, 그의 몸에 붙어 서서히 퍼져나갔다. 지하의 음산한 젤리들이 슬금슬금 인표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으며 그것은 마치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처럼 보였다. 젤리들의 기괴한 움직임은 무시무시하고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켰고 실로 불길하게 변해갔다. 이제 그를 보호했던 든든한 보호막은 없고 나약한 몸뚱이만 남아있었다.

 

  은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치 시간마저 정지된 듯 그 모든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인표의 절망적인 모습과 그를 감싸는 씨앗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젤리들의 기괴한 움직임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은영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절망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그녀는 눈물과 한숨을 삼키며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은영은 생각했다. 은아는 기약없는 과업으로부터 자유를 찾았을 것이다. 혜민은 지금쯤 복통이 멈추었다는 것을 모른채 작은 자취방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있을 터였다. 오늘 두 사람을 구해냈다. 그리곤 그녀는 이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깨달았다.
"인표야.. 조금만 참아 내가 구해줄게"

 


-2편에 계속...-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밝은 밤  (0) 2024.08.22
덧니가 보고 싶어  (0) 2024.08.11
비행운  (0) 2024.07.27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이만큼 가까이  (4) 2024.06.09

 

영화 소공녀가 떠오른다. 하루 한잔의 위스키와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미소는 그 뜻을 점철하여 담담하게 살아가지만 현실은 팍팍하며 주변의 시선 또한 곱지가 않다. 머무를 장소를 찾으며 옛 친구들을 찾아가나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은 이러한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마주할 수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담담하기에 글은 더욱 공포스럽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영화 소공녀처럼,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사연을 가진 아픔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이들이 겪는 고난과 역경은 마치 비행운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깊은 상처나.. 알 수 없는 암담하고 모호한 결론을 맺고 끝이 난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이야기하자면 "서른"이다.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도하고 잠도 자던 친한 언니에게 그간의 자신의 일을 털어놓는 이야기이다. 작중 주인공은 이른바 다단계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속의 암담한 묘사가 생생하다. 오랜만에 연락온 과거 자신의 학원 제자였던 학생의 오랜만의 연락, 그녀는 자신의 제자를 설득하여 다단계에 빠지게 만들었고, 그리고 제자는 좌절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어진다. 읽는 연속 충격의 연속이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비행운의 "서른" 中

 

제목 "서른"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통 외형으로나 사회적 경험으로나 앳된 모습을 탈피난 어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른이 되지 못하였다. 그녀가 언니와 함께 독서실 생활을 하던 시간들, 목표하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들, 학원에서 일을 하던 시간들이 지났다고하여 과거는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걸까?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시간들을 추억이라고 표현하며 기억속에 켜켜이 묻어놓는다. 이런 추억들이 무수히 쌓이고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고, 희노애락이 가득했던 과거와 달리 애애애애만 가득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면에서 그녀는 어른이 되지 못하였다. 소공녀의 미소 또한 어른이 되지 못하였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어린왕자 中

 

미소는 고장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고, 주정뱅이를 만나고, 장미를 만나고, 여우를 만났다. 미소의 친구들은 그때의 미소를 기억한다. 미소는 변함이 없는데, 달라진 것은 현실의 어려움에 어찌저찌 짜맞추어나가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한테는 미소적 사고(?)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나는 "서른"과 "소공녀"가 현대판 차가운 버전의 어린왕자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해설자는 행복을 기다리느라 지겨운 청춘들에게 있어 이 소설이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 말한다. 아이러니한 말이다. 암담하고 기괴하고 한편으로는 거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위로가 된다니.. 이 책에서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나와 상황을 비슷하게 여기거나, 동질감이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담백한 문체여서 더욱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쩐지 작가는 우리들에게 절망과 불행, 비참함에 빠지더라도 괜찮다며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이야기해주며 손을 건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희망 따위라곤 없는 이야기지만.................................................................. 위로받을 수 있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신기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을 제게 처음 알려준 사람이 생각나요. 그것도 번번이요. 처음 가본 길, 처음 읽은 책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떠올라요.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버리는 것 같아요.

 

 

나는 푸른 불빛에 얼비친 그의 옆얼굴을 가만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사람을 본격적으로 좋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 내 사진을 보고 그렇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선배밖에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다만 나는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좀 외로웠다.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고립감.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다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순수를 모르는 순수. 청춘을 모르는 청춘.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따금 그 아가씨 말이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해할 수 있늘 것 같던 기분이. 어쩌면 명화, 그렇게 잠깐 살고만 북쪽 여자도 용대에겐 끝까지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다 듣고 내리지 못한 노래. 생각도 잘 안나면서 잊을 수 없는 음악 말이다. 명화는 많은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용대가 섭섭한 것은, 그녀가 역시 자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가버렸다는 거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앞에서 함께했던 것처럼 이 소설집에서 '비행운'은 셋이다. 그 하나는 비행운을 보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동경의 형식이요, 둘째는 잠시의 형상일 뿐 이내 무화되는 비행운의 모습처럼 그 어떤 동경을 향한 실천적 움직임도 의미 있는 궤적을 산출하지 못한다는 비루한 존재론적 전락 혹은 비존재감의 형식이요, 그 셋째는 행복을 동경하는 주체들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비행운의 연쇄가 암시하는 불우한 상처와 그 아픔을 함께 아파하기의 형식이다.

 

 

 

끝.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덧니가 보고 싶어  (0) 2024.08.11
보건교사 안은영 (팬픽션)  (0) 2024.08.0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이만큼 가까이  (4) 2024.06.09
재인, 재욱, 재훈  (0) 2024.05.18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가족 관계, 선후배간의 일상적인 관계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릇된 사회적 통념, 가슴 아픈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로부터 생기는 개개인이 겪는 어려움과 슬픔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그들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희망의 빛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나는 여러 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작품집을 읽으며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깊은 울림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희원씨가 앞으로 겪을 일들을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녀의 말이 내게는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을 갖지 말라는 충고로 들렸다. 그런 식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고 미성숙한 것인지 왜 모르냐는 채근으로 들렸다. 나는 내가 그런 어린애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수 없어서 그녀의 말에 그다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듯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고통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과 연대의 순간들을 담아낸다. 또한, 주인공이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나중에 본인이 그 위치가 되고나서야 상대의 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젊은 강사와 그를 동경하는 희원의 이야기, 교지편집부에서의 첨예하게 대립하는 해진과 희영, 정윤의 이야기, 인턴 다희와 정규직 주인공. 이들은 결국 서로의 입장에 대한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끝내는 서로를 말없이 응원하고, 이해해주게 된다. 이야기 과정에서의 섬세한 문체와 따뜻한 시선은 나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작은 빛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제가 커다란 스노볼 위를 기어다니는 달팽이 같아요. 스노볼 안에는 예쁜 집도 있고,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선물꾸러미도 있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그걸 계속 바라보면서 들어가지는 못해요. 들어갈 방법도 없는 것 같고.

그녀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말성이다 입을 열었다.

다희씨는 합격하겠지만, 아니더라도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뱉었을 때, 그녀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변명을 하고 싶어 망설이는 동안 다희가 말했다.

선배는 빈말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고유한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다. 최은영 작가는 인물들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눈물과 함께 용기를 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그 빛이 우리의 길을 밝혀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최은영 작가 특유의 문체는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문장은 시적이고, 때로는 서정적이다. 복잡한 감정을 간결한 문장 속에 담아내는 그녀의 능력은 독자로 하여금 깊이 공감하게 한다. 특히 그녀의 비유와 은유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품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했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녀의 문장은 부드럽고도 생생하게 독자의 마음을 물들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종종 삶의 고통 속에서 절망에 빠지기 쉽지만, 이 책은 그런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속삭인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에게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그 빛이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그 희미한 빛이 주는 따뜻함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결론적으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게되는 상처의 깊이를 탐구하고, 그 속에서의 희망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이 책은 모든 이에게, 특히 삶의 고난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 속에 작은 등불을 켜주며, 그 빛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밝게 비춰줄 것이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건교사 안은영 (팬픽션)  (0) 2024.08.02
비행운  (0) 2024.07.27
이만큼 가까이  (4) 2024.06.09
재인, 재욱, 재훈  (0) 2024.05.18
피프티피플  (1) 2024.04.28


노래방에가면 녹음 기능이 있었는데 어릴 때 이걸 이용해서 친구들과 웃기는 노래들을 모아서 앨범으로 만든적이 있다.
반 친구들과 공유해서 들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2집, 3집까지 냈었다. `이만큼 가까이`는 그때의 기억들에 대한 유대감을 되살아나게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가끔 친구들이 그 앨범을 그리워해서 자료를 찾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20대가 되고 나의 친한 친구들은 술을 잘 못마셨는데, 그 이유로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을 자주 마셨다.
당시 쌍용동에 있는 Wa bar에 자주 갔었는데, 화자가 비디오 영상을 수집하듯 친구들이 먹은 칵테일의 맛과 느낌을
최대한 노트북에 잘 정리하고자 노력했었다.
웃긴건 그걸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칵테일 바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ㅋㅋ

그래서 칵테일을 먹을 때면 그 수집된 기록의 맛을 보며 추천을 해주곤 했다.

"블루 사파이어, 뭔가 상큼한 소다맛 같은거야 네가 저번에 맛있다고 했었네" 라고하면서 말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각별히 좋아했던 칵테일은 B-52였다. B-52는 폭격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이름 그대로 강렬한 느낌을 그대로 살린 칵테일이라 할 수 있다.
초콜릿과 커피, 오렌지 리큐르가 들어가 있고 바텐더가 술을 내어주며 잔에 불을 붙인다,
불이 붙은 칵테일에 빨대를 넣고 한번에 빨아 마셔버린다. 그 화끈함에 상남자가 된 기분을 체험할 수 있다.
그 시절 단숨에 들이킨 칵테일에 몇초만에 7000원이 날아갔다고 생각한다면 하남자였다.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마냥 이렇게 즐겁고 유쾌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도 있다. `주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나는 malfuntion했다.
기이한 표현이다. 기계에 쓰는 말인데, 이걸 사람한테 쓰자니 정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쉽게 털어놓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성인이 되고나서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스택오버플로우 개발자들의 표현을 빌려 요즘 나는 "It works for me." 라고 하고싶다. :)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화자 `나`는 `주완`이 죽은 것을 스스로에게 탓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다른 세계선이 있다 가정하고 '주완'이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지에 대한 것이다.
가령 철망에 늘어진 채 처참해진 텁텁이를 보자마자 위기감을 느껴 도망을 갔다면?
애초에 떠돌이 개들을 찾아나서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성인이 된 `주완`은 더이상 malfuntion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위해 잘 작동해~" 라며 과거일을 웃으며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화자 `나`와의 관계도 더욱 발전하였을지도 모르고, 결국엔 조각가 부부 `인영`의 인정도 받아
함께 더블데이트를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과거를 떠올려보면 나는 소설 속 화자인 `나`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주완`이기도하였고, `찬겸`이기도 하였으며 `민웅`이기도 했던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촉촉해지는 글귀들을 적고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귀가 뜨거워진 날은 후드를 쓰고 잤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머릿속의 따듯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사람 없는 정류장엔 풍선껌 향기만 남아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풍선껌 향기만 남겨놓은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어쩐지 아는 사람일 것만 같았다.

 


추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정세랑 작가의 책과 같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제와 생각한다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행동들, 아동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과 애써 개입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예다.
사랑스러운 친구들과의 이야기 속에 잊어선 안 될 사회현상들을 잘 녹여내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주시는 정세랑 작가님을 응원하게 된다 :)

 

★ ★ ★ ★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행운  (0) 2024.07.27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재인, 재욱, 재훈  (0) 2024.05.18
피프티피플  (1) 2024.04.28
[독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0) 2024.04.01

 

★★★☆☆

재인, 재욱, 재훈은 평범한(?) 삼남매이다.

가족과의 여행에서 형광빛이 나는 평범한 칼국수를 먹고는 각자만의 소소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 능력으로 각자들의 일상속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일종의 SF장르의 소설이다.

 

다른 SF장르와는 달리 일상이 그 능력으로 인해 180 변화하거나, 그 능력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다소 특이한 능력정도다? 라는 느낌

나는 이러한 특징이 정세랑 작가님이 의도한 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사소한 초능력일지라도, 그들은 그 능력을 이용해 누군가들의 목숨을 구해낸다.

사실 현실에서도 위기와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 위해 크게 대단한 초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나의 그저 소소한 관심과 마음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긍정적 변화를 도출해낼 수 있다.

어쩌면 삼남매는 이런 능력이 아니었어도, 그들을 구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이만큼 가까이  (4) 2024.06.09
피프티피플  (1) 2024.04.28
[독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0) 2024.04.01
쇼코의 미소  (0) 2024.03.25

50명의 사람들의 일상이 맞추어진 퍼즐처럼 엮여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내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하게 되었는데,

내 가족, 친구, 회사 동료들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 순간들에는 어떤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상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생각하지, 내가 아닌 근처에 있는 타인의 삶을 이야기를 상상하기는 어렵고, 그럴 동기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호

슈크림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호 할아버지는 내가 닮아가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너무 많이 가졌으니 잃어도 좋다'

비로소 스스로에 대한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사가 되고싶은 아이에게 운을 나누어주겠다며 악수를 청하는 할아버지,

나 또한 그런 여유를 가지고 살기위해 노력 해야겠다.

 

진선미

문영린 에피소드에서 진선미는 새엄마로서 등장한다.

또, 누군가의 아내로서 등장하며,

누군가의 고객이자, 함께 일하게 될 비즈니스 관계로 등장하게 된다.

사실 진선미라는 존재를 알게 되며, 이 사람에 대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이 사람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책의 차례를 다시 되짚어보고 이름을 꼼꼼히 어디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놀랍게도 꽤나 여러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 치고는 본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마 진선미는 T일 것이고, 자유분방하며 나이스한 성격이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자신의 단단한 가치관 아래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진선미라는 인물은 굉장히 즐거워보인다. 지향하고싶은 삶을 가졌다고 해야할지..

특히 새엄마로서 매우 이성적인 어조로 조언하는 이야기는 나도 뜨끔하게 만들었다. ㅎㅎ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네가 크면서 해결해야겠지만, 몸무게 때문에 더 힘들면 그건 지금 해결해보자. 돈으로 못 빼는 살이 어딨니?"

 

이 책은 어 이사람 아는 사람인데..? 하고 그 사람이 다시 궁금해져 다시 책의 이곳저곳을 넘겨보게 만든다. 액자식 구성을 독자에게 맡긴 책 같다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개성있고 재미있게 읽고, 이러한 이유로 읽는데 참 오랜 시간이 들은 책이다. 인상깊었다! :)

 

 

그리고... 인물간의 관계도를 그려야 겠다고 생각을 하기도하였는데

똑똑한 독자들이 이미 만들어놓았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이만큼 가까이  (4) 2024.06.09
재인, 재욱, 재훈  (0) 2024.05.18
[독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0) 2024.04.01
쇼코의 미소  (0) 2024.03.25

 

<그것이 알고싶다> 애청자이기도 한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법의학 분야에서 매우 저명한 사람인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하는 유성호 교수는 의학적인 측면에서 사인을 분석하고 시체에서 말해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 없이, 사회가 마련해둔 틀 안에서 맞이하게 된다. 50%를 초과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집에서 죽기를 희망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별 준비없이 병원에서 의사가 생명연장을 시도하거나, 약물투여를 통해 연명하다가 죽게된다. 이게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죽음의 모습일까?

나는 지금까지 태어난 이후로 나의 죽는 과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마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고, 회피하기 싫은, 거부감이 드는 단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절대적으로 경험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가족들에게 미리 자신의 장례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는지, 재산이나 금전적인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디테일하게 전달될수록 준비하는 가족들의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고 좋다고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이었기에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뇌사 상태에 빠진다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유지하기를 원할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뇌가 죽었는데, 몸에 에너지만 공급해준들 그게 과연 나는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걸까. 이러한 문제는 이를 결정할 가족들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딜레마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의 선택에 따라 죽음이 결정되는 것은 너무 괴로운일 일테니까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부터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걸까? 엄마의 배속에서 나오는 순간? 수정란이 착상하는 순간? 이 밖에도 줄기세포에 대한 과학연구 분야의 윤리적 논쟁들.. 그뿐만이 아니다, 본인이 스스로 죽는 행동에 대해 어떠한 시각으로 판단해야 할지에 대한 것도 매우 심각한 이슈다. 내가 말하는 스스로 죽는 행동이란 치료를 해서 더 이상 의미있는 개선이 없을 것이라 판단 될 때 환자들이 본인의 운명을 선택하거나, 질병이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환경에 대해 비관하고 죽는 행동을 의미한다.

미성숙한 생각이었다면, '본인의 선택인데 왜 문제인 걸까?'라고 되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에서 설명한 사례와 연구에 따르면, 투신으로써 스스로 죽는 행동을 선택하였다가 살아난 사람의 인터뷰 내용으로 "그 순간,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으며, 고통받는 환자들이 안락사를 위해충분한 의사의 정신적 상담 및 동의를 구하고 스스로 죽는 행동을 위한 버튼을 제공했을 때, 결국 끝내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자들은 약 60%가 넘는다고 한다. 사실 모두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스스로 죽는 행동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본인의 선택이니 자유라거나, 종교적 이유로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1차원적 의견이며, 분명 그에 따른 부작용을 낳는 방향성일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인간의 존엄성, 생명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국가마다의 국민들의 문화, 인식에 따라 달라지고 시대적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끊임없이 변화한다.

나의 죽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나의 마지막이 아름다울까, 그리고 만일 안락사가 고려해야 할 정도로 내가 극심히 고통받고 치유불가한 상태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7.14
이만큼 가까이  (4) 2024.06.09
재인, 재욱, 재훈  (0) 2024.05.18
피프티피플  (1) 2024.04.28
쇼코의 미소  (0) 2024.03.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