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가면 녹음 기능이 있었는데 어릴 때 이걸 이용해서 친구들과 웃기는 노래들을 모아서 앨범으로 만든적이 있다.
반 친구들과 공유해서 들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2집, 3집까지 냈었다. `이만큼 가까이`는 그때의 기억들에 대한 유대감을 되살아나게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가끔 친구들이 그 앨범을 그리워해서 자료를 찾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20대가 되고 나의 친한 친구들은 술을 잘 못마셨는데, 그 이유로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을 자주 마셨다.
당시 쌍용동에 있는 Wa bar에 자주 갔었는데, 화자가 비디오 영상을 수집하듯 친구들이 먹은 칵테일의 맛과 느낌을
최대한 노트북에 잘 정리하고자 노력했었다.
웃긴건 그걸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칵테일 바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ㅋㅋ

그래서 칵테일을 먹을 때면 그 수집된 기록의 맛을 보며 추천을 해주곤 했다.

"블루 사파이어, 뭔가 상큼한 소다맛 같은거야 네가 저번에 맛있다고 했었네" 라고하면서 말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각별히 좋아했던 칵테일은 B-52였다. B-52는 폭격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이름 그대로 강렬한 느낌을 그대로 살린 칵테일이라 할 수 있다.
초콜릿과 커피, 오렌지 리큐르가 들어가 있고 바텐더가 술을 내어주며 잔에 불을 붙인다,
불이 붙은 칵테일에 빨대를 넣고 한번에 빨아 마셔버린다. 그 화끈함에 상남자가 된 기분을 체험할 수 있다.
그 시절 단숨에 들이킨 칵테일에 몇초만에 7000원이 날아갔다고 생각한다면 하남자였다.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마냥 이렇게 즐겁고 유쾌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도 있다. `주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나는 malfuntion했다.
기이한 표현이다. 기계에 쓰는 말인데, 이걸 사람한테 쓰자니 정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쉽게 털어놓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성인이 되고나서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스택오버플로우 개발자들의 표현을 빌려 요즘 나는 "It works for me." 라고 하고싶다. :)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화자 `나`는 `주완`이 죽은 것을 스스로에게 탓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다른 세계선이 있다 가정하고 '주완'이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지에 대한 것이다.
가령 철망에 늘어진 채 처참해진 텁텁이를 보자마자 위기감을 느껴 도망을 갔다면?
애초에 떠돌이 개들을 찾아나서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성인이 된 `주완`은 더이상 malfuntion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위해 잘 작동해~" 라며 과거일을 웃으며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화자 `나`와의 관계도 더욱 발전하였을지도 모르고, 결국엔 조각가 부부 `인영`의 인정도 받아
함께 더블데이트를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과거를 떠올려보면 나는 소설 속 화자인 `나`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주완`이기도하였고, `찬겸`이기도 하였으며 `민웅`이기도 했던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촉촉해지는 글귀들을 적고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귀가 뜨거워진 날은 후드를 쓰고 잤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머릿속의 따듯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사람 없는 정류장엔 풍선껌 향기만 남아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풍선껌 향기만 남겨놓은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어쩐지 아는 사람일 것만 같았다.

 


추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정세랑 작가의 책과 같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제와 생각한다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행동들, 아동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과 애써 개입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예다.
사랑스러운 친구들과의 이야기 속에 잊어선 안 될 사회현상들을 잘 녹여내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주시는 정세랑 작가님을 응원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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