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대개는 인성이나 성품, 혹은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아 그것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인간성은 그런 고상한 가치와는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가 쉽게 외면하려 했던 인간 본연의 솔직한 모습들을 들춰내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불공평한 삶 속에서 느끼는 억울함과 슬픔, 때로는 숨기고 싶은 비열함까지. 이 책은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간다움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행복과 불행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삶을 더 넓게,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기준으로 삶을 평가하려 들지만, 이 책은 오히려 불행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이 가져다주는 위안을 이야기합니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만났던 명대사들은 제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의 내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행복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삶이 꼭 옳은 걸까?'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죠...
이 책은 1998년에 처음 출간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래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깊이와 진솔함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1990년대의 감성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흡사 SNL에서 들을 법한 서울 사투리처럼 친근하고 정겹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도 나에겐 위로를 자아내는 순간들.. 그 위태로운 균형이 어쩌면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단순히 '좋은 책'이라는 평가를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혀주는 귀한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읽는 내내 느껴지는 진솔한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제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이 책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삶과 인간다움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안진진이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누구를 자신의 짝으로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장면은 단순히 누군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의 방향과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두 남자는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두 가지 상반된 욕망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김장우는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대표합니다. 그의 어리숙한 모습은 때로 그녀에게 안쓰럽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진진이 관계를 주도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게 합니다. 반대로 나영규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모든 것이 철저히 계획된 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안정적이지만 그 안정 속에서 안진진은 자신이 너무나도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처럼요.. 자신은 죄수고 당신은 간수같다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했던 이 대사를 김장우에게 했네요? 저는 이 부분도 이해가 안가는 모순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누가봐도 나영규가 더 죄수과 간수를 보는 듯 하잖아요?)
어쨌거나 김장우냐, 나영규냐의 문제는 제 생각엔 곧 그녀가 어떤 결핍을 감수하며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장우를 선택하면, 경제적 결핍이 따를 것이고 나영규를 선택하면, 자유의 결핍이 따르겠지요. (물론 이건 너무나 일차원적으로만 요약 한 것이고 이 안에는 매우 복잡한 심리선들이 담겨 있습니다.)
안진진이 결국 나영규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의 가족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나영규를 선택한 것은 팩트지만, 왜 그러했는지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머니와 쌍둥이 이모, 두 자매의 대비는 안진진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어머니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녀는 무질서하고 고된 삶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진진에게도 물려주었습니다. 반면 이모는 풍족하지만 이모부로부터 통제된 삶을 살아가며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두 여성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라온 진진에게 경제적 결핍은 가장 견디기 힘든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김장우와의 사랑이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지만 그녀는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반복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반면 나영규와의 관계는 자유로움을 제한당하는 느낌을 주었지만 어느순간에 그녀에게는 안정이라는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이 안정이 비록 숨이 막히는 삶을 암시할지라도 그녀는 그 선택이 가져다줄 안전함을 놓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안진진의 선택은 그녀가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남자 중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어떠한 결핍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타협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결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어쩌면 결핍을 껴안는 과정이라는 사실을요... 과연 안진진은 나영규와의 앞으로의 삶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그녀의 미래가 잘 상상되진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얻는 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 이잖아요..
여러분은 인생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결핍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며 결국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느냐가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아마도 안진진이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기 위해 스스로를 대조(?)해 보았을,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런데 이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맙니다.
안진진의 이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그녀의 삶이 철저히 통제되고 규격화된 환경 속에서 점차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갔기 때문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녀의 선택은 단순히 한순간의 절망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억압과 내면의 공허함이 드러난 결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모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건축설계를 하는 이모부와 함께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풍족함은 동시에 그녀의 삶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녀의 삶은 외적으로는 완벽했지만, 내적으로는 자율성을 잃은 감옥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되고 계산된 삶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표현할 여지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녀의 선택은 안진진의 어머니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경제적인 결핍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면 이모는 그 결핍이 채워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고통을 겪었던 것입니다. 이 둘의 삶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 삶의 결과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모부와의 관계도 그녀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모부는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지향했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안정이 아닌 억압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녀의 삶에서 '예측 가능성'은 더 이상 안정감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 자신이 삶의 조연에 머물러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삶을 살면서 점차 무기력함과 소외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모의 극단적인 선택은 단순히 그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근본적 갈등과 욕구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자유와 안정 사이의 모순, 그리고 삶 속에서 진정한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을 말해줍니다. 이모는 결국 자신이 잃어버린 자유를 찾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선택은 삶의 풍족함과 안정감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책을 읽으며 작속 이모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은 다소 아리송 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본 친구와 함께 이야기 하기를 "아주 배가 불렀다"며 농담을 했거든요. 사실 여전히 안진진의 어머니에 대한 기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삶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합니다. 행복이란 단순히 결핍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누가 내 인생 하드모드로 현질도 안하고 키우냐"라는 우스갯소리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온갖 복잡한 감정과 고난들이 마치 게임의 하드모드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어쩌면 이 책 속 주인공들도 그런 하드모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드모드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이 책이 알려줬습니다. 단순히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성취감이 더 크듯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프고 고된 순간들이 쌓이면서 결국에는 나만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힘든 순간에도 묻고 싶습니다. "이건 또 무슨 퀘스트야?" 하고요. 슬픔이 와도, 아픔이 찾아와도, 그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경험치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하드모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레어템처럼 그런 순간들이 나중에는 나만의 특별한 보물이 되겠죠...
결국 인생은 하드모드로 설정된 채로도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이 모험이 끝나면, 지금의 모든 순간들이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깨닫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

그리고 난... 모순 그 자체야...!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는 거대한 불행 앞에서 차라리 무릎을 꿇어버리는 것이 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때떄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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