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광주를 여행했을 때, 나는 이 책 소년이 온다를 미처 읽지 못했다. 아마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의 발걸음은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다. 여행 중 들렀던 여러 장소들 속에서 그저 자동차로 근처를 지나갔었을지 모르는 가장 깊은 흔적을 남겼을 도청과 금남로를 떠올려본다. 그곳을 찾아갔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도청 앞에 서서 차갑게 식은 돌바닥에 새겨진 역사의 고통을 떠올리고 그 고통 속에서 으스러져간 사람들의 숨결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금남로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현재의 번화와 과거의 끔찍했던 현실이 겹쳐 보이면서 그 간극 속에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여행길에서 나는 광주의 복잡하고 환한 번화가를 거닐기도 하고 여유롭게 땡볕을 돌아다니며 배스가 전국에서 제일 많다는 영산강을 찾아, 줄기따라 하류에서 상류로 이동해가며 낚시와 미식, 음주가무 여행으로 하루를 보냈다. 세월이 그대로 남겨진 낡은 골목길을 걷기도하고 조용히 흐르는 영산강의 걸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한가로움을 즐겼던 그 날들. 나는 광주의 과거를 모르고도 그곳의 풍요로운 여행에 푹 빠져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돌아보니, 그 여행의 즐거움이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내가 광주를 누볐던 그 땅이 사실은 얼마나 뜨겁고 처절했던 순간들을 품고 있는지, 그 속에서 피어난 자유와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의 광주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인식 없이 떠돌았던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했다. 역사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빛나는 오늘만 바라보며 지나친 여행이었지만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그 땅에 다시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는 도청에서, 금남로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각기 다른 인물들의 시선으로 조명하며 그 깊은 상처를 들춰낸다. 내게 있어 이 소설은 단순히 당시의 참상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비극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인간 본질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성찰하게 만들었다. 다소 기분이 이상해지는 책이다. 그래서 읽기가 꽤나 힘들었고 시간도 들었지만 찬찬히 뜯어보고 의미를 고민해보았다. 이번 독후감에서는 동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죽음과 생존 그리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혼'의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역사적 진실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의 시신을 지키려 애쓰던 소년이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죽음이 남긴 상처는 단순히 개개인의 고통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정대의 부재가 동호의 삶 전체를 삼켜버린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장례식 없는 죽음은 완결되지 않은 비극이며 이는 이후의 장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몫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 광주의 참상이 개인의 삶과 지역 사회를 어떻게 영원히 짓눌렀는지를 보여준다. 죽음의 처리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현실은 생존자들에게 끝없는 죄책감과 슬픔을 남겼고 동호의 내면을 끊임없이 파괴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작품은 동호를 비롯한 광주의 피해자들이 겪은 도륙의 현장을 생생히 재현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한순간에 짐승으로 취급되고 이름 없는 고깃덩어리로 던져지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역사의 비극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 증명하지만 동호와 같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존엄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 또한 느낄 수 있다.

 

 

 

광주의 학살은 단순한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권리와 정체성을 짓밟는 일이었다. 동호가 본 군인들의 잔혹한 행위는 역사 속에서 반복된 비극이며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려는 정부의 모습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이었다.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뒤로는 잔혹하게 진실을 숨기고 무고한 생명을 파괴했던 것이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볼까.

 

 

 

소설에서 혼은 단순한 영혼이나 유령이 아니다. 그것은 잊히지 않는 기억과 진실을 증언하는 존재로서 상징성을 가진다. 이 질문은 죽음을 초월한 존재들이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혼은 피해자들이 남긴 고통과 정의에 대한 갈망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직면해야 할 진실이다.
혼이 지켜본다는 것은 망각하려는 현대 사회의 태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들을 잊지 않고 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못했을 때 훗날 우리는 또 어떤 사건이 반복 될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당신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광주 이후의 삶은 저녁으로 멈춰버린 것과 같다. 더 이상 밝아지지도 어두워지지도 않는 끝나지 않은 저녁. 이는 피해자와 생존자들이 겪는 정지된 삶을 상징한다. 참혹한 나날들이 지나고 빠르게 이후 일상의 복귀를 시도하지만 저녁의 어둠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붙잡는다. 사건의 이후에도 그 당시의 현실을 알리고, 진상을 바로 잡기위해 끝없이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저녁은 무력감과 고립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애국가와 태극기는 본래 국민의 존엄과 자유를 상징해야 한다. 하지만 광주에서 그것은 역설적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는 진실을 왜곡하고 침묵하려 했던 정부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려는 힘에 맞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소년이 온다를 다 읽기도 전에 더 알아보고싶은 마음에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을 때, 그 감정은 단순히 슬픔에 머물지 않았다. 분노와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나라면 총을 들고 계엄군과 대치할 수 있을까? 진격하는 탱크 앞에 나가 설득, 회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역사적 진실이 얼마나 철저히 은폐될 수 있는지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생명과 존엄이 부정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일깨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극적인 진실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제대로 교육되고 이해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단순히 한 지역의 비극으로만 기억하거나 왜곡된 정보, 혹자는 정치적인 이슈에 가려진 채 진실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 현대사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공론화의 부재는 이러한 무지를 방치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나침반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러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의 비극은 단순히 광주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과 폭력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인간 존엄과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희생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단순히 시험 문제로만 기억하거나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는 교육 체계와 사회적 무관심은 그들을 다시 한 번 죽이는 일이다.

 

 

 

다큐멘터리 속 장면들은 한강의 글과 맞닿아 있었다. 화면 속 시체로 가득 찬 체육관 울부짖는 가족들 그리고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떠밀려가는 학생들. 총을 든 민간인 젊은이들. 책 속 동호의 눈앞에서 무너진 존엄성과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현실은 하나의 큰 물음으로 이어졌다. 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잊으려 하는가? 왜 우리는 이 역사를 마치 우리와 무관한 일처럼 외면하는가?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명확하다. 첫째,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을 단순히 '민주주의의 교훈'이라는 낭만적인 구호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철저히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성찰하며 앞으로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경고이다. 둘째, 우리는 진실을 직시하고 왜곡된 정보와 싸우며 이를 후대에 올바르게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단순히 교육자나 정치인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공유해야 할 공통의 의무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민주화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그 날의 비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5.18의 참상을 뉴스나 유튜브의 일부 자료로만 접하며 단편적인 지식만을 얻는다. 이러한 현실은 진실을 왜곡하려는 세력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셈이다.(음모론 같은 소릴하는게 아니다. 자신의 입장, 믿는 신념(?), 이득을 얻기 위해 실제로 왜곡하려는 자들, 가치를 훼손하는 자들이 있다는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광주의 비극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이해하며 이를 사회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이 책과 다큐멘터리가 남긴 감정은 단순히 눈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행동하라는 명령이다. 더 이상 '끝나지 않은 저녁' 속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진실을 드러내고 공유하며, 교육과 제도적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의 희생에 응답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또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다.
광주는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외면한다면 그날의 비극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무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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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안녕하세요. 역사적 실제 사건을 다루는 책인만큼, 이 독후감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찾아본 몇가지 팩트 자료들을 읽기 쉽게 시간의 흐름순으로 간단히 준비해보았습니다. 제가 학습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혹여 부족한 내용이 있다면 코멘트 달아주시면 보충토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준비한 자료를 읽기전 다음 사항은 숙지해주세요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그 진실과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성찰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의 내용은 정치적 이념이나 어떠한 특정 단체의 관점을 대변하지 않으며 오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은 사건의 진상과 주요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엄정한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며 이에 대한 비판이나 의견이 있는 경우에도 반드시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역사는 사실에 기반한 기록과 공정한 해석에 의해 계승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편향된 관점이나 감정적인 반응은 배제되어야 하며 모든 논의는 사실 관계를 철저히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원칙 하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벗어난 왜곡이나 선동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1. 5·18 민주화운동은 처음에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전두환 군부 세력의 비상계엄 확대와 민주화 억압에 항의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시위대는 주먹밥을 나누며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어갔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생필품을 지원하며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이 학생들과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2.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가장 조직적이고 강력한 저항을 한 지역은 광주였습니다.
이는 단지 지역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열망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였습니다.
전남도청에서 벌어진 최후의 저항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3. 계엄군은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
계엄군은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가했고 진압 과정에서 시민들을 잔인하게 폭행하거나 고문했습니다.
당시 사망자는 최소 165명으로 공식 집계되지만(사망자 165명, 행방불명자 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등 606명), 실종자와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암매장, 미신고 등)를 포함하면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투 병력으로 투입된 공수부대는 학생뿐 아니라 노인, 어린아이까지 폭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4. 정부는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
당시 신군부는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며 시민군을 폭도로 몰아갔습니다.
사건 후 오랜 기간 동안 군사독재 정권은 언론 통제를 통해 진실을 감추고 왜곡했습니다.
군부와 정부는 광주 시민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렸습니다. 

5. 시민 정신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폭력 속에서도 서로 돕고 지켰습니다.
시민군은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대응하여 무장을 시작했지만,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규율을 유지했습니다. 

6. 국민적 저항의 시작
광주의 항쟁은 6월 민주항쟁 등 이후의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비록 광주의 진실이 오랫동안 가려졌지만 민주화 운동의 기억은 전국적으로 퍼졌고, 이는 결국 전두환 정권의 퇴진과 민주화 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7. 밝혀진 진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1987년 이후 민주화 운동과 함께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전두환과 노태우 등 책임자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유엔이 5.18 민주화운동을 세계 역사적 기록물로 등재하였으며 이는 사건의 중요성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상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의 터닝 포인트였으며 이를 통해 광주는 "민주주의 성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희생과 연대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민주화 운동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8. 출처
 - 국가기록원, 5.18기념재단 공식 자료
 - 광주민주화운동사, 5.18기념재단
 - 5.18특별법 관련 재판 기록, 증언 자료.
 - 1980년대 언론 검열 기록, 헌정사 관련 자료.
 - 5.18기념재단 증언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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