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부조리' 개념을 이야기한다. (부조리에 대한 개념은 그의 책 이방인에서도 다루어진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추후에 다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참 어려운 책이다. 번역이 어렵게 된 탓일까?
인간은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지만, 그 과정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세상과 충돌하며 부조리를 낳는다.
그러나 카뮈는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항복하거나 어떤 알 수 없는 위안을 찾는 대신
인간은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혼과 여름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계절이나 의식적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카뮈가 찬미한 지중해적 삶의 태도, 즉 세상의 아름다움과 절망을 동시에 끌어안는 자세를 의미한다.
여름은 풍요와 열정을, 결혼은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의 융합을 상징한다.
특히 그가 묘사하는 자연의 장면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무게를 직시하게 만드는 거울이라 해야 할까....
결혼은 한 개인의 선택이나 관계를 넘어서 삶과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수용을 상징하며 여름은 이러한 수용 속에서도 삶의 생생함과 온기를 발견하는 카뮈적 시선을 보여준 것 같다.
샐러드의 끝에서 만난 하늘빛 맥주 한캔 (부제 : 샐러드 5일 챌린지를 마치며..)
삶은 종종 내게 하나의 모순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혀 무엇인가를 붙잡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고 있음을 안다.
우리는 선택의 연속인 인생을 살고 있다. 누군가의 선택이 옳든 그르든 그것은 결국 그들의 몫이겠지만 나는 내 안에 움트는 부조리를 부정할 수 없다.
사랑은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를 일어서게 만든다. 그것은 여름과 같다.
뜨겁고 찬란하며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속에 뛰어든다.
선택의 무게는 시간 앞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 어떠한 이름도 남기지 못하더라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샐러드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삼킬때 목구멍이 꽉차는 자그마한 고구마와 얇게 썬 할라피뇨와 상추 잎, 드레싱이 거의 묻지 않은 닭가슴살 조각들이 담긴 접시를 보며 내 선택이 삶의 어느 부분을 대표하는지 생각했다. 절제와 균형, 더 나은 나를 위해 계산된 행위. 하지만 얼음컵과 옆에 놓인 하늘빛 캔맥주는 그와 반대로 무언가 더 원초적인 갈망을 상징했다.
절제와 해방의 춤은 끝없이 반복되며 그 가운데서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다.
캔을 열자 탄산의 미세한 울림이 퍼진다. 맥주는 그 자체로 자연이었다. 태양 아래 열린 들판의 향기 그리고 흐르는 강물의 청량함. 그러나 그 속에는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고자 만든 흔적이 배어 있었다. 샐러드가 내게 건강과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라면, 맥주는 순간의 해방,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짧은 위로라고 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자연을 삶의 은유로 사용했다. 그는 바다를 통해 무한함을, 태양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열정을 그려냈다. 내 앞의 샐러드와 맥주도 어쩌면 그런 대립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하나는 자발적인 통제와 삶의 목표를 향한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부조리 속에서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다.
삶은 때로 맥주의 탄산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기쁨으로 채워지기도 하고 샐러드의 각양각색의 이파리들처럼 질긴 균형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다. 맥주의 쓴맛과 샐러드의 밋밋함 속에 어떤 날은 하나를 택하고, 어떤 날은 둘 다 내 몫으로 삼으며.
하늘빛 맥주캔을 기울이며 나는 어느새 태양 아래 생겨난 그림자를 떠올린다. 빛이 내리쬐는 만큼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그것은 서로를 비추면서도 결코 하나로 어우러질 수 없는 두 존재처럼 나와 어떤 다른 마음 사이에 놓인 부조리한 틈을 상징한다.
겨울 한낮의 햇빛 아래 산책길, 그 빛은 모든 것을 더 선명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발밑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그 빛은 달콤하지만 눈부심이 동반된다. 그 빛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의 솔직한 감정들,
그러나 그림자는 늘 따라붙었다. 그것은 결코 나에게 속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깨달음이었다.
샐러드와 맥주처럼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궤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햇빛처럼 뜨겁고 현실적이었다. 나는 지금도 샐러드 한 조각을 씹으며 그 흔적이 남긴 씁쓸함과 맥주의 청량함을 동시에 맛본다.
사람은 빛과 그림자 속에서 길을 찾는다. 그것은 내게 빛이었다가, 다시 그림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궤적을 완성시킨다.
빛은 사라질지라도 나는 산책을 멈추지 않는다.
샐러드의 푸른색이 고요한 결단이라면, 맥주의 쌉쌀한 거품은 그 결단의 흔들림이다. 그러나 부조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 결단과 흔들림 모두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에.
모든 그림자는 언젠가 끝난다.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벽의 빛일 수도, 완전한 어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끊임없이 걷고 있는 나 자신이다.
삶은 나와 부조리 사이의 대화다. 노랑빛 거품 속에서, 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그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결말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실패도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성공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산책길의 태양이 저물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어둠으로 보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 희미한 가능성을 본다.
카뮈는 부조리를 말하며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답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강조했던 건, 부조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우리의 태도였다.
샐러드의 차분함과 맥주의 자유로운 거품 사이에서 나는 이 모순된 세계를 껴안는다.
부조리의 경계에서 가장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다. 어떤 이는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하지만 나는 정답보다 나은 질문을 찾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나를 찾는다.
알제리의 바다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삶의 길은 때로 나를 고요한 해변으로, 때로는 거센 폭풍으로 몰아넣는다.
바닷물의 냄새를 맡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평온인가 아니면 폭풍 속에서의 자유인가?
카뮈는 해답 대신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라고 말했다. 사랑과 삶이 모두 부조리의 경계에 서 있음을 인정하며 나는 이 모순을 껴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날 나는 샐러드의 초록빛 고요함을 끝까지 느끼는 동시에 맥주의 쌉쌀함을 흠뻑 누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앞에 펼쳐질 모든 가능성을 마주할 것이다.
부조리가 있어도 삶은 여전히 나에게 웃음을 안겨줄테니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