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읽고 추천해준 책이었다. 책 뒷면 설명란에 애정 없는 결혼 속에서 '낡은 폐선'처럼 살아가는 이선 프롬이라는 문구를 읽고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그동안 읽기 편안한 책만 읽어서 그런지 책 초반에는 특유의 번역체로 읽기가 다소 불편했으나 곧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선에 빠져들게 되었다.
책 소개 및 요약
나의 해설에 앞서 작가와 이 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 책의 작가 에디스 워튼(Edith Wharton)은 최초의 여성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기도 하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여성 작가가 귀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어로 작가를 뜻하는 writter라는 단어를 보면 남성형만 있고 여성형이 없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에 따르면 글쓰기는 으레 남성의 일이지 여성이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여성을 가리킬 때는 굳이 '여류'라는 표를 달아 남성 작가와 구분 짓는다. 언어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유표화라고 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전문직에 속하는 직업치고 여성이나 여류라고 유표화하지 않는 직업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워튼 작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미국 여성 작가들 중 순수 문학의 길을 걸은 최초의 작가라 할 수 있다.
이선 프롬은 미국 작가 에디스 워튼(Edith Wharton)이 1911년에 발표한 소설로 사랑과 비극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이선, 그의 아내 지나, 그리고 이 집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는 지나의 사촌 매티이다. 워튼은 이 소설을 통해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의 감정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복잡한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선 프롬은 작고 황량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농부로 자신의 꿈과 열망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워튼은 이선을 통해 당시 사회의 제약과 운명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그가 처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선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열망과 이를 이루지 못하는 좌절이 뒤섞인 비극적 운명으로 그의 내면은 마치 얼어붙은 뉴잉글랜드의 겨울처럼 차갑고 고립되어 있다. 소설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워튼의 묘사 기법이다. 그녀는 뉴잉글랜드의 혹독한 겨울 풍경을 이선의 내적 갈등과 고립감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눈 덮인 들판, 얼어붙은 나무, 차가운 바람은 이선이 느끼는 정서적 추위를 극적으로 부각시키며 독자는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의 운명을 더욱 굳어지게 만드는 요소임을 느끼게 된다. 워튼은 이러한 자연 묘사를 통해 감정을 형상화하며 이선이 처한 비극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선과 매티의 관계는 소설 속에서의 애틋함과 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독자들의 마음에까지 스며들도록 한다. 매티는 이선이 꿈꾸던 자유와 사랑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이선은 마치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한 순간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다. 이는 그들의 운명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며,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필연적인 결말에 대해 예감하게 만든다. 결국, 이선 프롬은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책임, 그리고 운명 사이의 충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워튼은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감정의 울림을 전달한다. 이선이 겪는 고통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모든 인간이 한 번쯤 경험하는 삶의 비극적 측면을 상기시킨다. 그가 처한 상황은 나로 하여금 삶의 무거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렇듯, 이선 프롬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선 인간의 내면 탐구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그 안에서 살아가고 또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고찰하게 한다.
데니스 이디에게 질투를 느끼는 이선
교회 청년부 축제에서 춤을 추는 매티와 데니스 이디. 이들의 관계는 소설 이선 프롬에서 중요한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데니스 이디는 마을의 부유한 청년으로, 이선의 아내 지나의 사촌인 매티 실버에게 관심을 보인다. 데니스는 젊고 활기차며, 외향적인 성격으로 매티에게 매료되어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호의를 베푼다. 그의 부유함과 매티를 향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구애는 이선에게 깊은 불안과 질투를 유발한다.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이선의 감성선을 나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선은 매티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지나와의 결혼 생활로 인해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매티는 이선에게 있어서 현실의 고통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이때 이선이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강렬한 갈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 매티에게 데니스가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선은 불안과 질투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선이 데니스와 매티 사이에서 느끼는 질투는 이선의 내면 갈등을 더욱 부각시킨다. 데니스는 이선이 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자유롭고 대담한 젊음을 상징한다. 매티와 데니스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이선은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더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그가 매티에 대한 감정이 더욱 불타오르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고 이선이 매티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이성호감을 표현하도록 만든다.
이선의 감정 변화
이선 프롬에서 이선이 매티에 대한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한다. 처음에 이선은 매티를 단순히 지나의 병간호를 돕는 존재로 여겼으나 점차 그녀에 대한 연정을 품게 된다. 매티는 이선의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 감정은 애초에 금지된 사랑이라는 한계 속에서 피어나는 만큼 이선은 매티를 향한 마음을 억누르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지고 복잡해진다. 이선의 감정선은 매티와 함께하는 작은 순간들 속에서 서서히 절정에 이른다. 두 사람이 함께 눈 속을 걸으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거나 매티가 그의 집에서 가사일을 도울 때마다 이선의 마음은 점점 더 그녀에게 끌린다. 끝내는 지나가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가 없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정도였으니까.(지나가 없으면 매티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므로) 매티의 호감까지 확인한 이선은 더욱 불타오르게 되고 지나를 버리고 서부로 매티와 도망치는 극단적인 계획까지 구상하게 된다.(결말을 본다면, 차라리 그 계획을 실행하는게 나았을 것이다.) 매티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 하나하나가 이선에게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빛이 되었으며 그녀와의 일상적인 교감이 그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소설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이선과 매티가 함께 썰매를 타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다. 이들은 썰매를 타고 눈 덮인 언덕을 내려가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썰매 타기는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만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깊고 애절하다.
에필로그를 읽고
에필로그에서 화자가 이선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나이 들어버린 매티와 지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젊고 생기발랄했던 매티는 이제 지나의 옛 모습처럼 병들고 쓸쓸한 상태로, 지나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이 순간 화자는 그들의 젊음과 삶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고 서로에게 얽매여버린 삶을 목격하게 된다. 이선의 집 안에는 고립감과 좌절 그리고 시간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으며, 화자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며 무거운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이선과 매티가 함께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원래 아팠던 지나가 불구가 되어버린 메티를 돌보고있고 이선 또한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이유를 깨닫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 에디스 워튼이 이 장면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꿈을 억누르고 살아갈 때 시간이 흘러 어떤 비극적 결과에 직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선과 매티는 결국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남은 인생을 고립과 후회의 공간 속에서 보내게 된다. 워튼은 이 비극적 결말을 통해 억눌린 욕망과 선택하지 못한 삶이 얼마나 무겁고 파괴적인지 경고하고 있다. 화자는 이 집 안에서 이들의 희망이 산산조각 난 모습을 마주하고, 이선의 선택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가능성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가 떠나는 순간, 독자들은 이들의 삶이 이제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는 소설이 끝나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결말은 단순히 이선, 매티, 지나의 비극을 넘어, 우리의 삶에서 선택의 중요성과 그 결과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워튼은 우리에게 한 번의 선택이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억눌린 감정과 욕망이 어떻게 인간을 갉아먹는지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선의 비극은 단순히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억압된 욕망이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진실을 이야기한다.
도덕에 따른 욕망의 구속
옮긴이 김옥동 작가님은 이 책이 출간된 지 백 년이 훌쩍 넘었음을 언급하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욕망과, 도덕, 젠더와 결혼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윤리나 도덕의 이름으로 억압해야 할까? 아니면 욕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충족시키는 것이 건강한 삶일까? 옮긴이 김옥동 작가가 던진 질문처럼 이선 프롬에서 다루어진 인간의 욕망, 도덕, 젠더, 결혼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한 주제들이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거와 달리 이러한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상당히 진보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과거의 이선과 매티가 도덕적 제약과 사회적 구조 속에서 그들의 사랑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반면, 오늘날의 사회는 보다 개인의 욕망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선과 매티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복과 자율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며, 결혼 역시 선택 가능한 관계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구속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선이 만약 현대에 살았다면, 그는 매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매티 또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더 많은 자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비극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두 사람 모두에게 성장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경험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도망칠 자금 50달러가 없어서 좌절한다던가, 그로인해 썰매를 나무에 들이받고 서로의 삶을 끝내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결말을 상상해보자면 이선은 매티와 함께 자신들의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과감히 새로운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매티와 이선은 서로를 통해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서부로 마을을 떠난다. 매티는 그녀의 자유로움을 이선에게 전파하며 그를 고립된 농장에서 벗어나게 했을 것이다. 그들이 떠나는 길은 이제 더 이상 눈 덮인 황량한 스탁필드의 들판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로 가득 찬 길로 묘사될 수 있다. 이선의 마음 속 얼어붙었던 감정들은 따뜻한 봄날처럼 녹아내리고 그들의 썰매는 비극의 눈길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환희의 질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인이 과거에 비해 도덕이라는 애매모호할 수 있고 주관적인 영역에 대해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 도덕적, 사회적 억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율성과 행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의 이선과 매티가 불가능했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며 이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와 사랑은 오늘날 더 쉽게 허락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며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선과 매티의 사랑이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졌다면 그들은 도덕적 압박과 사회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따르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건강하게 드러내고 충족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삶에서는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현대인은 확실히 과거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각관계
지나는 질병으로 인해 매티에게 의지하면서도 그녀를 잠재적 경쟁자로 경계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회적 관습과 도덕적 규범에 따라 지나는 이선과 매티의 관계를 명확하게 의심했으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소설 속 지나는 자신의 불안감과 의심을 통해 이선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궁극적으로 매티를 내쫓으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이 현대에 이르렀다면 지나는 전통적인 결혼의 틀에서 벗어나 더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지나는 이선과 매티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직면할 수 있는 도구와 사회적 환경을 갖추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 지나가 이선과 매티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단순히 경쟁자로서 매티를 몰아내려는 감정보다 자신이 결혼 생활에서 원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욕망에 대해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의 지나라면 아마도 결혼의 의미와 자신의 행복을 더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결혼이 필연적인 구속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관계임을 인지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이선과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하다고 느꼈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고 이선과 갈라서거나, 서로에게 더 나은 방향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나 또한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 속 지나는 자신의 불안과 의심을 무력하게 억누르고 이선을 질타하거나 매티를 내보내는 선택을 함으로써 권위를 행사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력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방법이 많지 않았고 사회적 관습에 얽매여 있었다. 반면, 현대의 지나는 자신의 욕망을 더 당당히 표현하고 관계에 대해 보다 실용적이고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율성을 가졌을 것이다. 그녀는 이선에게 정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관계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명확히 제시하거나, 이선을 떠나는 선택으로 스스로의 삶을 다시 주도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결국, 이선, 매티, 지나 모두 억압된 감정과 갈등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의 욕망에 대해 더 정직해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책임이 충돌할 때, 이를 숨기고 억누르기보다, 솔직하게 직면하고, 모든 당사자가 자신을 위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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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난 손발이 꽁꽁 묵였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선 아저씨, 가끔 제게 편지해 주세요."
"아, 편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난 손을 뻗어 너를 만지고 싶어.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또 너를 보살피고 싶단 말이야. 네가 아플 때, 네가 외로울 때 같이 있고 싶어."
"아저씨는 제가 잘 지낼 거라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그럼 내가 필요 없다는 말이야? 결혼할 생각인 거지!"
"참, 이선 아저씨도!" 그녀가 소리쳤다.
"맷 어째서 네게 그런 느낌을 받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네가 차라리 죽는 게 나아!" (p 143)
"일어나! 어서 일어나라니깐!" 그가 매티를 재촉했다. 하지만 매티는 계쏙해서 "왜 앞에 앉으려는 거예요?" 하고 되풀이 해 말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네가 나를 안고 있는 걸 느끼고 싶으니까." 그는 더듬거리며 매티를 끌어 일으켰다.
매티는 그의 대답이 만족스러웠거나, 아니면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굴복한 듯 했다. 이선은 몸을 숙이고 손을 더듬어 어둠 속에서 자신보다 앞에 탔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유리처럼 반들거리는 길을 찾아 그 가장자리 사이에 조심스럽게 썰매를 놓았다. 매티는 이선이 썰매 앞쪽에 다리를 꼬고 자리를 잡는 동안 기다렸다. 그런 다음 재빨리 그의 등뒤에 웅크려 앉아 두 팔로 그를 꼭 잡았다. 목에 닿은 그녀의 숨결에 그는 다시 한번 몸을 떨고 뛰어오르다시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뇌리를 스쳤다. 그려의 말이 옳았다. 이 길이 서로 헤어지는 것보다 나았다. 그는 몸을 뒤로 젖히고 그녀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끌어 당겼다........
막 두 사람이 출발하는 순간 밤색 말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귀에 익은 간절한 부름, 그리고 이 소리가 불러오는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이 그를 따라 첫번째 코스까지 내려왔다. 반쯤 내려가자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가 오르막이었고, 그 다음에는 또다시 현기증 나는 긴 내리막이었다. 이 길을 날개 돋은 듯 달릴 때 스탁필드가 공간의 한 점처럼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며 그들을 멀리 구름 낀 밤하늘 속으로 날아오르는 듯했따. 이때 그 큰 느릅나무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 굽은 길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되뇌었다. "우린 할 수 있어. 난 알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p. 15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