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외계인이 오직 너를 위해 2만 광년을 날아왔다면 그 외계인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거야. 그런데 만약 그 외계인이 전 애인과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면? 그리고 전 애인의 모든 단점이 싹 사라지고, 그 대신 X보다 훨씬 좋은 성격을 가졌다면 어떨까?
이쯤 되면 마음이 살짝 흔들리지 않을까? 고작 전 애인보다 더 나은, 아니, 아주 완벽한 성격을 가진 존재라니. 게다가 그 존재가 네 곁에 있기 위해 우주 끝에서부터 날아왔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이 소설은 로맨틱한 판타지와 기묘한 과학 소설의 경계선에서 펼쳐지는 이상한 사랑 이야기야. 읽다보면 어느새 현실 감각은 저 멀리 떠나고 너도 모르게 그 외계인에게 마음이 끌려버릴지도 몰라.

 

 

 

세상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습관처럼 계속 만날 필요는 없어, 멈춰도 돼. 이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들면 언제든 멈추는 거야.

 

 

  한아는 친구 유리가 이렇게 말했을 때 공감했어. 그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렸지. 경민에 대한 불만이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온거야..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도 이런 상황 꽤 흔하지 않아? 친구와 애인이 있는데 나에겐 둘 다 좋은 사람인데도 그 둘이 뭔가 좀 안 맞는 느낌이 들 때 말이야. 친구는 친구대로 애인에 대한 불만이 많고 그런데 네 입장에선 둘 다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매해지는 그런 상황 말이야.
한아는 가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곤 했을거야. '경민이 조금만 덜 무심했으면...' 혹자는 '가끔이라도 내 말을 좀 더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때마다 "야 그만 만나, 멈춰도 돼"라는 유리의 말이 속삭이듯 떠올랐을 거야.
아니면 유리의 입장이 되어 본적이 있어? 친구의 애인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뭔가 그 커플을 바라보면 많이 어긋나있는 느낌이 드는 거지. 네가 만약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라면... 아마도 유리처럼 솔직하게 말할 거야. "야, 세상에 좋은 사람 정말 많아. 그냥 잠깐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때?" 하고 말이지. 물론, 그 말이 상대방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않겠지.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한아도 그런 상황에서 고심했을 거야. 경민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말이야. 우리도 때론 그런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게 되잖아. 그럴 때면 결국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한아가 유리의 조언을 귀담아듣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보면 어쩌면 그녀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실루엣만으로도 오래된 남자친구를 알아볼 수 있었고, 달려가서 안길 정도의 애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민을 사랑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한아는 그 순간에도 체념하듯 생각했다.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다.

 

 


하 정말... 한아는 어쩌면 헤어졌을 때 실컷 같이 욕해줬는데 나중가서 다시 사귄다고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 (농담이고) 한아는 경민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경민의 실루엣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어. 경민이 거기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한아는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내생각엔 애정이라는 감정이 묘하게 복잡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부분 때문인 것 같아. 분명히 경민의 단점은 그녀를 서운하게 하게 만들고 불만스럽게도 만들었지만... 모처럼 다시만난 그 순간만큼은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을거야.
그래서 한아는 스스로에게 체념할 수밖에 없었어. '아, 내가 아직도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랑이 예전처럼 열정적이거나 행복한 느낌은 아니었어. 오히려 체념에 가까운 애정이었지. 내 생각에 한아가 말한 체념이란 결국 이 사람의 단점을 다 알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거야.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분도 들지 않아?
어쩌면 체념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작가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걸꺼야. 우리는 누군가를 오랫동안 사랑하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보는 게 아니라 단점까지도 다 보게 되잖아? 그리고 그 단점을 받아들이기로 할 때 사랑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단순한 설렘이나 열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더 깊은 애정으로 말이야. 너무 당연한 소린가?
한아가 느낀 체념이란 그 깊은 애정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몰라. 어쩌면 경민을 향한 사랑이 한아를 힘들게 하면서도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을 거야. 이게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이 가진 특성의 일부 아닐까?

 

 

 

주영 -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취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경민 -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주영의 생각과 경민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주영은 세상엔 '거인'들이 있고 그들이 만들어낸 큰 흐름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휩쓸려 살아간다고 생각해. 스티브잡스나 일론머스크, 소크라테스를 일컫는 이 거인들은 그들의 재능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거지.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자신이 그 '거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을지도 몰라. 아마도 그 과정에서 많은 상상을 했겠지. 나도 이 거대한 흐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인생이 될까? 그러다가 결국 어쩌면 그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주는 아티스트에게 끌렸고 자신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태워보고싶은 깊은 내면이 있었을지두 몰라.
주영의 생각이 너무 염세적이라고 생각돼? 근데 우리도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봤을 거야. 아니 생각보다 많이 할지도 모르지 아주 거대한 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분야만큼은, 한국에서는 적어도...등등... 무언가 이루고 싶어하는 건 맞잖아? 우리가 하는 일에서 혹은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작은 물결이라도 만들어내고 싶다는 바람. 하지만 때로는 그 물결조차 일으키기 어려워 보이고 결국 큰 흐름에 휩쓸려 가는 듯한 느낌을 받지. 이러다 보면 나도 어느새 주영처럼 '내가 이 거대한 흐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구.
이런 주영과는 반대로 경민은 한아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해. 한아가 스스로를 진취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때 경민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지.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것들 소중함을 잊어버린 것들을 한아가 지키고 있다는 거야. 이 말에 한아는 큰 감동을 받았을 것 같아. 우리가 흔히 무시하는 작은 것들이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달았겠지.
경민의 이 말은 한아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느끼게 했을 거야. 음.. 사실 더 큰 가치라고 표현하기보단 정 반대의 가치라고 느껴서 놀랐을 것 같아. 그 '작은 자리'가 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더하는지 말이야.
그게 뭐가 대단하냐구? 더 들어봐 내 생각에 한아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내가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거인은 아닐지라도 그 흐름의 중요한 부분을 지키고 있는 거구나.' 한아가 지켜낸 작은 것들이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겠지. 좀 더 읽다보면 지렁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건데 그 부분을 읽어봐 그럼 더 이해가 잘 될거야~
주영의 깨달음과 경민의 말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우리가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일까? 그리고 그 기여는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이해해?

 

 

 

한아는 기가 막혔다. 이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증오스러운 얼굴을 빌려 쓰고서는? 한 번도 지구에 이런 걸 초청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뻔뻔스러운 외계 생물 같으니.

 

 

 

  난 이 장면 진짜 웃겼어. ㅋㅋ 자, 한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황당한 상황이지. 외계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것도 자기 전 남자친구 경민의 얼굴을 쓰고선 "사랑해"라고 고백을 하는데 한아 입장에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야. 특히나 그 경민이 이미 한아에게는 이런저런 감정의 골칫덩어리였으니까 그 얼굴로 외계인이 사랑을 속삭이니 기가 막혔겠지. 외계인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순간에도 한아는 경민의 그 익숙한 얼굴이 너무 싫었던 거야. 그래서 그 외계인 경민에게 내심 임시완이나 박보검의 얼굴로 바꾸는건 어떠냐고 제안한 건지도 몰라.
그런데 더 웃긴 건 한아가 이 외계인과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는 거야. "만약 지구별을 폭파하면 파혼하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지. 한아는 스스로 이 상황이 코메디 시트콤 같다고 느꼈을거야. 마치 거대한 우주 스케일의 연애 게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겠지. 거기에다가 "파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참 재밌어. 이제 연애부터 시작인데... 사실 한아는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거겠지 라고 생각했어.

 

 

 

"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럭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외계인 경민이 한아를 관찰하면서 느낀 감정이 정말 재밌어. 누군가 보면 그냥 지나칠 이야기지만 나는 엔트로피라는 단어에 꽂혔어. 정세랑 작가는 엔트로피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아. 가끔씩 보았거든. 엔트로피라는 말,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냥 '혼돈'이란 뜻이잖아? 외계인 경민이 보기에 한아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존재였던 거야. 즉 경민의 망원경에는 우주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혼자서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인간, 바로 한아가 보였던거지!
생각해봐, 지렁이를 조심스럽게 화단으로 옮기는 사람이라니! 이건 정말 일종의 히어로라고도 할 수 있어. 지렁이 한 마리를 구하면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질서 있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한아는 거대한 우주의 시선에서 보면 정말 작은 존재지만 그 작은 손길로 세상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야.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진 지렁이를 구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외계인 경민의 눈에는 그게 엄청나게 특별한 일로 보였던 거지.
그리고 고래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한아의 마음씨! 아마 경민은 그 부분에서 정말 감동받았을 거야. 인간은 파괴적인 종족인데 한아는 그런 본능과는 동 떨어져 있어. 마치 우주에서 엔트로피에 맞서는 작은 성냥 불꽃 같은 느낌이랄까? 경민이 한아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아마 그런 것일 거야. 이 지구라는 혼돈의 행성에서 어찌 이런 따끈한 마음을 가진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지 경민은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거야.
이렇게 보면 경민이 느낀 감정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경외심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네. 엔트로피가 우주에 널리 퍼져 있는 혼돈이라면, 한아는 그 혼돈 속에서 작은 질서를 만들어가는 존재. 그런 한아를 보며 경민은 그냥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우주를 뛰어넘는 감동을 느낀 게 아닐까 싶어. 너무 오버인가? 그래도 한아가 지렁이를 구할 때마다 고래를 형제자매로 여길 때마다 경민의 감정은 더 커져갔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외계인이 인간에게 반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적인 거시적 관점에서 본 한 인간의 작은 행동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의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야. 경민에게 한아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주의 혼돈 속에서 빛나는 작은 별 같은 존재였던 거지. (촉촉...)

 

 

 

"하지만 놀라게 하지 않고 만나고 싶었어. 너의 공간에서 함께 있고 싶었어. 자연스럽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만남이니까, 자연스러움을 가공하고 싶었어."

 

 

 

한아를 만나기 위해 외계인 경민이 했던 고민과 배려는 진짜로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야. 이 외계인 경민은 처음부터 한아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어. "자연스럽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만남"이라는 말이 딱 경민의 심정을 표현하는 거지. 우주에서 지구까지 오는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더 어려운 건 그녀를 당황시키지 않고 편하게 다가가는 거였을 거야... "어떻게 해야 그녀가 나를 경계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이상한 스토커나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오랜시간 우주를 뚫고 온 거야.
그래서 경민이 선택한 방법은 뭘까? 바로 그녀의 원래 남자친구 경민의 모습을 빌리는 거였어. 이건 진짜 묘수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모습을 빌린다는 건... 어찌 보면 아주 교묘하고도 슬기로운 선택이야. 나도 본 받아야겠어. 근데 이게 또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겠어? 대끔 그냥 "안녕? 나는 네 남자친구의 외계인 버전이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경민의 모든 걸 다 똑같이 흉내 낼 수도 없고.
실제로 디테일한 흉터를 재현해내지 못해서 한아에게 실제로 들키기도 했지. 그래서 경민은 엄청난 신경을 썼을 거야. 그가 한아의 경민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 아마 원래 경민이 좋아하는 음식, 말투, 행동 패턴까지 전부 철저히 분석했겠지. 하지만 외계인이니까, 인간의 미묘한 감정이나 표현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야. 나는 그래서 소설속에 나오진 않았지만 "아, 이건 좀 경민스럽지 않았어!"라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장면도 상상해보았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민은 한아와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처음엔 자신의 외계인임을 숨기려 했어. 외계인인 걸 들키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던 그 노력, 그 진심은 정말 귀엽지 않니? "자연스럽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만남"을 만들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민했을까? 아마도 그는 지구인들의 '데이트'가 뭔지, '사랑'이 뭔지, 그리고 그 모든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방법이 뭔지 그 우주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싸맸겠지.(원래의 인간 경민이는 제대로 자신에 대해 인수인계도 안하고 가버린 모양이야)
공교롭게도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하필이면 경민을 탐탁치 않아하는 유리에게 달려가서 프로포즈를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애원까지 했지만(그러나 왠지 달라진 경민의 모습에 유리는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지 ㅋㅋ)
결국 경민은 한아를 만나기 위해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어. 하필이면 장인어른, 장모님께 특별한 기술로 만든 다이아반지까지 선보이다니... 어쨌든 이러한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그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복잡하고도 대단한 것임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도 몸소 깨닫게 됐겠지.

 

 

 

"산속의 서늘한 공기가 눈물을 금세 마르게 했다. 하지만 한동안은 속으로, 속으로 눈물이 흐르겠지. 내 안쪽도 그런 빛나는 돌이라면, 눈물에 다 녹아버릴 거야. 한아는 식어버린 수프 컵을 내려놓았다."

 

 

 

원래 경민이 우주여행을 떠나면서 한아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로운 방향으로 탐색해나가는 여정이었어. 그러나 한아는 자신 옆에 남겨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경민 외계인 버전을 보며 큰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그동안 경민에 대해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나, 그동안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와 어떤 시간을 보내온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을거야...
산속의 차가운 공기처럼, 한아의 마음도 차갑고 냉정하게 변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눈물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던 진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 한아는 겉으론 눈물조차 나오지 않지만, 그 속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거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은 흘릴대로 다 흘리고 감정소모는 할대로 다해서 더이상 흘릴 눈물도, 감정도 없이 그냥 내면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 말이야... 넌 그래본적 있니?

 

 

 

"백날을 생각해봤자 답은 똑같을걸요.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난 따라갈 거야, 내 아티스트."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해. 비슷한 걸로 난 그 말을 좋아해. 평범한 며칠을 보내는 것보다, 어떤 순간은 몇 분의 순간이 매우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고. 비슷하게 상대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이지? 아티스트를 따라 우주로 따라간 주영에 대해 혹시 철없다는 생각을 해보았어? 다소 비현실적인 팬일수도 있지. 소설이니까 :) 사실 주영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과 직관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이야. 
누군가를 지켜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성비가 너무 좋은 것 같지 않아? 주영은 그런 인물이야. 상상해봐. 주영의 이런 팬심은 뭐랄까.. 어떤 아이가 좋아하는 슈퍼맨이 실제로 하늘을 날고 있다고 굳게 믿는 것과 같아. 그 팬심이 어쩌면 세상의 모든 논리나 진리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더 뜨겁고 더 특별할 수도 있잖아!

 

 

 

한아는 이제야 깨닫는 것이었는데, 한아만이 경민을 여기 붙잡아두던 유일한 닻이었는지 몰랐다. 닻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약하고 가벼운 닻, 가진게 없어 줄 것도 없었던 경민은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고 종국에는 지구를 떠나버린 거다.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을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닻이 없는 경민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까?
쉬운과정은 아니었으나 거기까지 이르자, 한아는 떠나버린 예전의 경민에 대한 원망을 어느 정도 버릴 수 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한아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커다란 변화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야. 너도 책을 읽어보았다면 잘 알겠지만 한아는 그동안 경민이 떠난 것에 대해 많은 원망과 슬픔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랬던 그녀는 이 장면에서 이 원망의 감정을 마침내 내려놓게 돼.
한아가 깨닫게 된 건 스스로를 '닻'이라는 메타포로 칭하면서야. 그녀는 경민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려 했지만 사실 그 닻은 너무도 유약하고 가벼운 존재였어. 경민은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걸 애써 외면하고 있던거지.
경민(구)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그것은 한아의 사랑만으로는 채울 수 없던거야.. 한아는 결국 경민이 떠난 이유가 자신 때문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단순히 사랑의 부족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돼.
이 깨달음은 한아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을 거야. 그녀는 경민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경민을 붙잡아두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거지. 그동안의 원망은 단순히 사랑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제 한아는 그 집착을 놓아줄 수 있게 된 거야.
경민은 그의 자유로움 속에서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제 한아도 그를 놓아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거지. 이 깨달음은 한아에게 있어 큰 성숙을 의미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한아는 그동안의 슬픔과 원망을 넘어서서 진정한 평화를 찾게 되는 거야.
한아는 이제 경민을 자유롭게 떠나보내며, 자신도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쳤을 거야. (근데 솔직히 마지막에 죽을때 다 되어서 돌아온건 좀 아니었던 것 같아... 모야...얘? 저기요... 다시 가주세요)

 

 

 

중요한 결정을 언제나 한아에게 맡겨주는 게 좋았다. 불안한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인 것도, 흔한 방식으로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될까봐 걱정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 방향으로는 걷지 않게 될 걸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은 책이었어!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자연스레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퇴근 후에 이 책을 읽는 동안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사실 거의 하루만에 다 읽은 것 같아)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느낌? 일종의 도피처 같았달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아가 인간의 몸으로 죽어갈 때 경민이 한아에게 우주를 견딜 수 있는 몸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잖아?(사실 이게 이미 몰래 처리된 계약이었단 점이 웃프기도 했어 한아가 경민(구)에게 계약서를 잘 읽었을 것을 탓할 때 그것이 복선일 줄이야..)
그 둘은 거의 반쯤은 영생의 몸이 되었을 것이고 그들이 유리 부부와 함께 우주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니까 나는 '은하철도 999'가 떠올랐어.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가 메텔과 함께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열차에 올라타고 각기 다른 사연이 있는 행성들을 돌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경험하잖아?(사실 철이의 여정에서 각 행성들에서 겪는 사람들의 사연에는 슬픔과 애틋함이 참 많아.. 그래서 사실 은하철도999가 어린아이들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지)
경민과 한아도 똑같이 그런 독특한 행성들을 방문하게 되겠지. 지구를 모방하여 어설프게 만든 행성에 들러 그곳에서 날개가 돋아난 행성 운영자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상상해봐. 그리고 우주의 끝까지 가서 어떤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까? 그리고 아티스트와 주연 일행과 다시 마주쳤을까? 어쩌면 둘은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해서, 평범하게 결혼해서 잘 살다 갔을지도 몰라. 재밌지?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 왜 작가는 하필 막바지에 '우주를 견딜 수 있는 몸(반쯤 영생?)'이라는 포인트를 넣었을까? 난 그게 단순히 인간이 영생을 꿈꾸고 갈망하기 때문에 넣은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해. 경민은 외계인이어서 오랜 수명을 지녔고 반면 한아는 인간이니까 고작해야 100년 남짓 살 수 있잖아. 수명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차이도 많을 거고. 하지만 우주를 견딜 수 있는 몸으로 바뀐다는 건 결국 경민과 한아가 동일한 존재로 서로 닮아간다는 해피엔딩을 예고한 게 아닐까 싶어. 이런 시각으로 보니 인상적이지? 그렇다고해.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종족(?)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닮아가고 함께 우주를 탐험하며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거잖아. 난 이런 모든 상상이 한아와 경민의 여정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어린 왕자가 말을 이었다.
"만약 누군가 수백만 개, 수천만 개 별 중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다면, 바로 별들만 쳐다봐도 행복할 거야. 속으로 '저기 어딘가에도 내 꽃이 있겠지'하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렇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 봐. 이건 그에게는, 별들이 모두 갑자기 빛을 잃을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 이게 중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진 뒤였다.
-어린왕자 中-

 

 

 

어린왕자에게 그 하나뿐인 꽃은 우주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존재였지.
외계인 경민이 고향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아마도 한아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을 거야.
장미가 없다면 그 많은 별들이 어린왕자에겐 의미가 없던 것처럼 아마 그런 마음으로 한아를 생각했어. 수많은 별들 속에서 단 하나의 꽃이 가진 특별함처럼 경민에게 한아는 우주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존재였던거야

 

 

 

-끝-









비닐봉지들을 모아 꽃모양으로 접어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역시 보고 싶네, 보고 싶잖아.
그렇지만 뭔가 달랐다. 원래의 경민을 보냈을 때의 그런 몸이 간질간질하고 신경이 쏠리고 불안해지는 보고 싶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해를 헤매고 있어도 이어져 있는 보고 싶음이었다.
기다리는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이건 또 새로운데? 한아는 계단에 앉아 생각했다.

 

 

 

안락하고 평화롭지만, 고민 없이 출아법으로 끝없이 자기 분열하는 것에 이제 모두 질린거야. 이주율이 순식간에 늘 거야.

 

 

 

한아는 문득 기분이 묘해졌다. 경민의 고향 사람들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게 될 우주 곳곳의 존재들을 생각했다. 집단 무의식 때문에 경민은 그 사랑도 희미하게나마 감지하고 함께 느끼고 또 꿈꾸고 있을 텐데, 질투가 났다.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질투인지, 아니면 그런 수많은 사랑의 지류들을 함께 느끼고 싶은 질투인지 분명치 않았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 좌표에는 예전에 기회와 가능성, 평행 우주를 거래하는 별이 있었어. 하지만 내부로 폭발해서 사라지고 없지. 말이 좋아 가능성이지, 가능성이야말로 너무 압축된 개념이라 잘못 다루면 위험해

 

 

 

멋진 날개지? 근데 돋을 때는 엄청 아팠던 모양이야. 최근에 저 사람이 자서전을 냈는데, 거대한 어금니가 어깨에서 돋는 것 만큼 아팠대.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고통을 겪고나서 더이상 자신을 만든 지구 애호가에게 복종하길 거부하고 체제 전복을 일으켰어. 지금은 저 행성의 운영자야.

 

 

 

커다란 오렌지 사탕 같은 태양이 지는 시간에 입안에 남은 소금기에 끌려 데킬라를 희석시킨 칵테일을 마시러 갔다. 밤늦게 돌아가며 키스하면, 연인의 입술 사이에 우주가 있었다.
돌아오고도 한참 동안,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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